[책의 향기]“권위에 도전하고 질문하라”… ‘창업 천국’ 이스라엘의 혁신 DNA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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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국가/아비 조리쉬 지음·문직섭 옮김/336쪽·1만8000원·다할미디어

하체 마비 장애인 재활 보조 기구 ‘리워크’. 다할미디어 제공
하체 마비 장애인 재활 보조 기구 ‘리워크’. 다할미디어 제공
이스라엘의 아밋 고퍼 박사는 1996년 교통사고로 등 아래쪽이 마비된 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는 대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2004년 시제품 기기를 완성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체 마비 장애인용 로봇 ‘리워크(ReWalk)’의 탄생이다. 허리 아래가 마비된 영국 여성 클레어 로마스는 이 기기를 착용하고 2012년 런던 마라톤 풀코스를 16일에 걸쳐 완주했다.

이스라엘 하면 먼저 가자지구 봉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다음 이미지는 아마 ‘스타트업 천국’일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탄생한 각종 기술 혁신을 다룬 책이다.

‘리워크’는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승인이 나 판매가 되고 있다. 연구 개발부터 시장에 내놓기까지의 난관을 고퍼 박사는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1950년대 개발된 태양열 집열기 ‘타보르 실렉티브 서피스’.
1950년대 개발된 태양열 집열기 ‘타보르 실렉티브 서피스’.
고퍼 박사는 처음에는 발명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2006년 ‘테크니온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 선정돼 자금과 멘토링, 교육 등 창업 초기 단계의 지원을 받았다. 이스라엘 정부의 ‘트누파 인센티브’ 프로그램에서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에 선정된 기업이 성공하면 보조금을 대출로 간주하고, 실패하면 정부 손실로 처리한다. 어떤 경우에도 스타트업 기업의 지분을 받지는 않는다. 고퍼 박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성공한 기업들과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었다. 창업자들에게 이스라엘이 왜 낙원인지 리워크의 사례는 보여준다.

물론 정부가 ‘판을 깐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인 특유의 ‘후츠파 정신’(대담함, 당돌함, 도전정신을 뜻함)이 배경에 있다. 한국 산업화의 한 비결이었고, 지금은 ‘삽질 문화’로 조롱받기도 하는 “하면 된다” 정신과 후츠파 정신은 좀 차이가 있다. 기업가이자 중동 전문가인 저자는 “이스라엘의 혁신적인 성공 바탕에는 권위에 도전하고 질문하며, 누구나 아는 뻔한 일은 거부하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기업 ‘마조 로보틱스’의 정밀 척추수술 보조용 로봇.
이스라엘 기업 ‘마조 로보틱스’의 정밀 척추수술 보조용 로봇.
혁신을 통해 이스라엘은 자연적 조건을 이겨냈다. 척박한 사막에서 물을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현대적 점적관수(點滴灌水·농작물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등 소량의 물을 공급) 기술, 저가의 밀폐형 곡물포대, 태양열 집열기 개발이 그것이다. 최초의 인터넷 방화벽, 캡슐 내시경, 음경 포피에서 추출한 인터페론(항바이러스성 단백질) 등 첨단 혁신 사례도 두루 책에 담겼다.

물론 철저히 유대인의 시각에서 쓰였기에 읽기 썩 편치 않은 구석도 적지 않다. 일례로 책은 ‘아이언 돔’(이스라엘의 로켓포 요격 시스템)을 주요 혁신 사례로 소개하며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를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 협상은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일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미니 앰뷸런스로 활용하는 ‘앰뷰사이클’은 훌륭한 아이디어이지만, 현실의 이스라엘군은 부상한 시위대를 치료하러 온 팔레스타인 의료진에 총이나 최루탄을 쏜다.

배터리와 카메라, 송신기가 내장된 캡슐 내시경 ‘필캠’.
배터리와 카메라, 송신기가 내장된 캡슐 내시경 ‘필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감 매장 ‘토이저러스’에서 구입한 부품을 사용해 요격 미사일의 제조 단가를 낮춘 것은 철저한 실용적 사고의 단면을 보여준다.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결과에 집착하면서 막상 실학(實學)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혁신국가#아비 조리쉬#이스라엘#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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