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조작 쉽고 인력수요 많아… ‘제2인생’ 준비물로 인기

유재영 기자 입력 2018-09-08 03:00수정 2018-09-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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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중장년 남성 ‘지게차 자격증’ 취득 열풍
6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현대중장비운전학원에서 대부분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교육생들이 기능 강사(오른쪽 검은 안경 쓴 이)의 지도를 받으며 지게차 운전 실습을 하고 있다. 파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은행 지점장이었던 김준원 씨(60). 35년 다닌 정든 은행을 떠난 그가 요즘에는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게차는 화물을 실어 옮기는 특수 차량이다. 평생 사무직으로 일했던 김 씨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6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현대중장비운전학원. 김 씨는 다른 젊은 실습생들과 오후 내내 실기연습에 매달렸다. 두 달가량 전 이곳에서 난생 처음 지게차 운전석에 앉았던 때에 비해서는 제법 익숙해졌다. 전후좌우 주행은 물론이고 물건을 정확하게 들어올리고 이동해 지정된 위치에 내려놓는 조작이 능숙해졌다.

○ “운전면허밖에 없는 내 존재 알게 한 도전”

“노후가 되면 작은 것이라도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이력서에 ‘지게차 운전 기능사’라는 자격을 추가할 수 있다는 행복감, 이런 게 동기 부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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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퇴직 후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는 경력, 또 주변 시선 때문에 도전을 머뭇거렸다. 퇴직 후에도 은행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1년을 근무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본인 스스로 완전히 백수가 됐다. 제2의 인생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죠. 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데리고 근무했던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국가기술자격이라고 해봐야 운전면허증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두 달 전 경기 고양상공회의소를 찾았다. 전국 71개 지방 상공회의소에서는 국내 기업과 연계해 중장년 실업자들의 구인, 구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보 제공과 상담 등을 하고 국비로 재취업 교육도 해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찾아간 고양상공회의소의 일자리희망센터도 대상자를 선발해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 중 물류(창고)관리 양성과정에 지원해 참여 대상자로 선정됐다. 김 씨는 중장비학원에서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시험부터 준비하게 됐다. 학원 실습 비용은 국비로 전액 지원받고 있다. 학창 시절 공부하던 심정으로 준비해 필기시험은 합격했다. 1, 2주 내로 실기시험을 치른다.

김 씨는 “지금은 예전 회사 동료들이 부러워한다. 대부분 퇴직 후 부동산중개업이나 식당을 하는데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버스와 굴착기 운전 자격증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며 웃었다.

김 씨처럼 고양상공회의소에서 국비 지원을 받고 학원에서 지게차 운전 실습을 받는 실업자는 30명. 이 중 4명은 교육 도중 취업이 됐다. 김 씨와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윤석훈 씨(50)는 “지금 지게차 실습을 같이하고 있는 분들 중에는 대기업 관리직 임원이나 교감 출신도 있다. 아침에 눈 뜨고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들 기뻐한다”며 “나도 물류 공장에서 오래 일을 했지만 지게차 운전 자격증이 있으면 더 많은 곳에서 이력서를 받아줄 것 같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50대 이상 국가기술자격 취득 1위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달 29일 발간한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한 사람 중 50대 이상이 6만3929명이다. 전체 취득자(67만7686명)의 9.4%다. 전년 대비 27.2% 증가했다.

연령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 찾기가 최악인 가운데 중장년층은 국가기술 자격증을 따서 재취업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 가운데 50대 이상 남성이 가장 많이 취득하는 것은 지게차 운전 기능사로 7420명이다. 2위 굴착기 운전 기능사(4778명)보다 월등히 많다. 지게차 기능사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장비 조작이 비교적 쉽고 산업 현장이나 유통 업체 등에서 수요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기호 현대중장비운전학원장은 “건설, 물류, 제조업 분야 기계 면허 중 굴착기나 타워크레인, 불도저 등보다 지게차가 다루기 쉽다. 들어올리는 장비 중량은 3t 내외다. 업체들의 인력 수요도 많고 제작과 유통을 직접 하는 개인 사업자들도 필요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자격증 취득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국비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가 아닌 개인이 비용을 내고 학원을 다니려면 등록 때부터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학원 입장에서는 수강생 대비 강사나 장비를 적정 수준으로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를 통해 한 과정당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 학원에서도 국비 지원을 받는 수강자를 제외하고 120명이 자비 일반과정 등록 신청을 했으나 30명만 ‘합격’했다. 전체적으로 수강자 수는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전문학원 입장에서는 수강률, 시험 합격률, 교육생 만족도 등에 따라 정부로부터 인센티브를 받거나 인증기관에 선정돼 저리 대출 지원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시험도 만만치 않다. 김 원장은 “일반 운전면허 시험으로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했다. 필기와 실기, 면접시험에서 각각 100점 만점 중 60점 이상 받으면 합격이지만 합격률이 높지 않다. 김 원장은 “업계에서는 지게차 필기시험은 차량 정비사 자격시험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어렵다. 전기 작업, 안전관리, 유압 등 전문적인 이론이 출제가 되기 때문에 필기시험 합격률은 40%대밖에 안 된다. 실기시험도 4분간의 코스 운전과 화물 적·하차 작업이 까다로워 합격률은 절반을 밑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20, 30대 젊은층도 시험을 얕봤다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중장년층은 재취업에 대한 열의가 높고, 가족 부양을 책임져야 한다는 동기가 뚜렷해 공부도 실기 연습도 열심히 해 합격률이 높다”고 했다.

지게차 자격 취득 수요는 점차 늘면서 전문학원도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서울지역은 소음 민원이 많고 부지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점차 물류 공장 등 인력 수요가 있는 서울 외곽 지역이나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직 업계에서 중장년층보다는 20∼40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학원들은 50대 이상 중장년층 교육생들의 취업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다. 김 원장은 “중장년층 실업자들은 재취업을 했을 때 이직률이 낮고 업무 능력도 좋다는 점을 최대한 강조한다”며 “이곳 지게차 운전 교육생들만 하더라도 현직 때 받았던 급여의 20%만 받아도 좋다며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을 따고 취업하면 한 달 보수는 180만∼200만 원가량이지만 대기업은 220만 원가량으로 약간 높다. 주의가 필요한 물품을 운반하는 업체에서는 2, 3개월가량 수습 기간을 거친 뒤 현장에 배치된다.

현장에서 만나본 50대 이상 지게차 운전 기능사 지원자 대부분에게서 마지막 이력서에 기재된 과거의 자신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지게차 자격증 취득에 나선 중장년층은 얼어붙은 취업 시장의 또 다른 단면을 절감하게 했다.

파주=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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