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말이 없어 더 그리운, 그 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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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조동진의 ‘제비꽃’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땐∼.”

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조동진 씨는 인내심과 성숙함으로 존경을 받았던 분입니다. 동진이 형은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말을 가장 느리게 적게 하셨던 분이죠. 처음 동진이 형을 직접 만났을 땐 그런 모습이 무게를 잡는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동진이 형은 추상화나 묵화 같은 정제되고 함축된 노래를 불렀죠. 서정적 표현까지도 자제하다 보니 때로는 청자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참선 혹은 자위가 될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제비꽃에서도 마지막 부분을 마치 억지로 하는 입맞춤처럼 “음음음…”으로 마무리하셨죠. 저는 그것이 못마땅했었습니다. 형이 네 마디 동안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하고 10음절을 말할 때, 저는 “차가운 너의 이별의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하고 그 두 배를 말했죠.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땐∼.”

동진이 형이 이끌던 ‘하나음악’에 있을 때 형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왜 그렇게 말을 느리게 적게 하냐고요. 형은 “나는 원래부터 그랬어. 우울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보니 후회할 실수는 적어지더라”라고 답하고 또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어 분석적 해석을 할 때면 최소한 세 번을 참고 재고한 후에 하라고 배웠지만, 그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빨리 잘난 척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타인의 기분 나쁜 언행도, 한 번은 나의 착각이려니 하고 참고, 두 번째는 상대방의 실수려니 하고 참고, 그 언행이 세 번째 반복될 때, 의도하고 그런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라는 규칙도 지키기 참 힘들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지키기 힘들죠. 그럴 때면 동진이 형의 얼굴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는 아직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동진이 형이 암을 앓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저는 차일피일 문병을 미루다, 여름이 물러갈 즈음에야 일산 형네 집에 갔습니다.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라는 가사가 자꾸 맴돌았기 때문이었죠. 평소 그렇게 말이 없으시던 분이 그날은 참 유쾌했습니다. 단둘이 쉬지 않고 여중생들처럼 수다를 떨었죠. 저는 속으로 뇌에 전이가 된 것인가 걱정을 했지만요.

형은 먼저 떠나신 형수님에게 잘해 주지 못했던 데 대한 후회와, 평생 실천하신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입장이나 신념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삶의 철학을 들려주셨죠. 주변 사람들이 건강식만을 강요해서 맛없는 것만 먹다가 죽겠다는 농담도. 그래서 마침 가지고 있던 고깃집 이용권을 드렸죠. 형은 “잘 먹을게” 하고 씩 웃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허망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장남이 “아버지께서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가르치기보다는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던, 안타까워도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와주던 동진이 형이 무척 그립습니다. 물론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 거부해도 조언을 해야 하겠지만, 최대한 건설적이고 상대방을 위하는 방식으
로 말해야겠죠. 무엇을 말하나보다 어떻게 말하나가 더 중요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렇게 참고 상대방을 위하다, ‘왜 나만 퍼주나?’ 하는 억울함에 쓸쓸해지면, 동진이 형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쓸쓸한 날엔 벌판으로 나가자. 아주 쓸쓸한 날엔 벌판을 넘어서 강변까지 나가자….”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동진#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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