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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그래도 진보하는 역사… 폭력 맞선 개인들의 삶 묘사 탁월

권기대 번역가·베가북스 대표
입력 2018-08-09 03:00업데이트 2018-08-09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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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
<1>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
아미타브 고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개 일반 민중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박경리문학상 권기대 심사위원은 “아픈 역사에 억눌린 인간 군상의 도도한 서사시”라고 평했다. ⓒulfandersen.photoshelter.com
《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올해로 8회를 맞는다. 이 상은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사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은 1억 원, 초대 수상자는 ‘광장’의 최인훈 작가였다. 이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메릴린 로빈슨(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영국) 순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최종 후보 5명을 결정했다. 수상자는 9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후보 가운데 첫 번째로 인도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62)를 소개한다. 번역가이자 베가북스 대표인 권기대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그의 작품 세계를 분석했다. 》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고 고국을 떠나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떠돌아야 하는 인도인. 우화적 요소도 섞여 있고 소위 피카레스크 소설(악당소설)로 분류해도 좋을 첫 장편소설 ‘이성의 동그라미’(1986년)의 주인공이다. 프랑스 최고 문학상의 하나인 메디치상을 탔으니 처녀작치고는 흔치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철수한 것이 1947년. 이때부터 이어지는 격동의 사건들은 두 나라 국민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바로 그런 상황에서 어느 인도인 가족과 영국인 가족의 역사가 뒤엉키는 서사적 내러티브가 아미타브 고시의 두 번째 소설 ‘섀도 라인스’(1988년)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단 두 작품으로 일찌감치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 그는 1995년 돌연 SF 스릴러 장르로 깜짝 노선 변경을 시도한다. 혹은 변덕스러운 외도였을까?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기생충 발견의 대안적인 역사를 풀어낸 소설 ‘캘커타 염색체’는 이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아서 C 클라크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새 밀레니엄 들어서 그가 보여줄 세계의 기후 이변, 지리정치, 기술 변화에 대한 관심의 씨앗도 품고 있다.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난 고시의 문학적 성과는 ‘유리 궁전’(2000년·사진)에서 절정을 맞는다. 5년의 현장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제국주의 침략, 식민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독립과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인도와 미얀마의 역사적 혼란을 도도하게 읽어낸 대서사시다. 참혹하고 암울하지만 어쨌든 진보하는 역사와 생경한 모더니티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개인의 운명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일제의 침탈과 전쟁, 탈식민주의와 정체성 혼란, 독립운동 등을 몸소 경험한 한국인들은 이 작품에 몇 배의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크고 복잡한 역사의 물줄기를 묘사하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파괴에 대응하는 개인들의 몸부림을 더욱 실감 나게 그려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을 동양의 ‘닥터 지바고’라고 불렀던 인디펜던트의 평에 공감한다.

제1차 아편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1830년대, 동남아 해역을 오가는 ‘아이비스’호에는 막노동꾼 쿨리와 아편 천지다. 일촉즉발 전쟁으로 치닫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렇잖아도 피땀으로 얼룩진 이 노동자들은 배 위에서 어떤 삶을 영위했을까? 또 다른 걸작 ‘양귀비의 바다’(2008년)가 좀 더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는 동아시아 식민사의 단면이다. 이후 5년 사이에 동일한 주제를 다룬 두 편의 소설이 더 만들어지면서 이 셋은 ‘아이비스 삼부작’으로 알려지게 된다.

고시의 소설작품은 대체로 인도양을 둘러싼 남아시아 국가들의 아픈 역사와 다양한 민족(특히 평범한 인물 군상)의 애환을 다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 주제는 결코 기획된 벤처도 아니었고 의식적인 프로젝트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벵골만, 아라비아해, 인도양 그리고 그것들이 이어주는 땅들은 언제나 나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소설들이 지닌 ‘식민지의 후손이 들려주는 식민주의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부차적일지 모른다. 전쟁이나 굶주림이나 자연재난 등에 직면해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민족들, 그렇기에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고향이나 고국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 갈수록 인류의 삶을 옥죄는 불확실성과 불예측성. 이러한 이슈를 풍요롭고 다층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탐색하는 고시의 작품은 지구촌이 한 가족처럼 가까워진 현대에도 폭넓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영국, 이집트, 미국을 오가는 연구와 강의를 통해 그의 저술에 특별한 자양분이 되었을 사회인류학과 비교문학, 지구온난화와 지정학에 대한 그의 예리한 관심과 활동 등은 그렇잖아도 빼어난 그의 문필에 비상한 힘과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 아미타브 고시는…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서 성장했다. 인도 델리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대를 나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 미국, 영국 등의 여러 유명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했으며, 현재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인 ‘양귀비의 바다’는 2008년 영국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으며, ‘유리 궁전’은 200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인터내셔널 e-Book 어워드를 받았다. 이 밖에도 ‘이성의 동그라미(The Circle of Reason)’ ‘캘커타 염색체’ 등의 작품으로 세계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권기대 번역가·베가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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