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폐허가 된 인간 세상… 고양이가 전하는 생존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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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2/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전미연 옮김/240쪽, 248쪽·각 1만2800원·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양이를 통해 인간의 교만함을 질타한다.‘고양이’에서 세상을 지배했지만 결국 실패한 인간 대신 고양이들이 공생을 위한 공동체 건설에 나선다. 동아일보DB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양이를 통해 인간의 교만함을 질타한다.‘고양이’에서 세상을 지배했지만 결국 실패한 인간 대신 고양이들이 공생을 위한 공동체 건설에 나선다. 동아일보DB
‘개미’, ‘제3인류’, ‘잠’, ‘나무’ 등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로 꼽힌 저자(57)가 고양이로 돌아왔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계를 그린 것.

종교 갈등으로 테러가 수시로 벌어지는 파리에 사는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도도하고 엉뚱하며 호기심이 많다. 인간이 자신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에 그들에게 자신은 신이라 여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른 암고양이로 착각했을 때는 상스럽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단박에 고상하다며 자긍심에 부풀어 오른다. 집사 나탈리는 물론이고 물고기, 개, 참새, 거미와도 소통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정수리에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단자가 꽂힌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인간의 언어는 물론 각종 지식을 섭렵했다. 피타고라스에게서 역사와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빠져든다. 하지만 테러가 내전으로 격화되고 변종 페스트까지 확산되자 파리는 유령 도시로 변해 쥐가 들끓는다. 살던 집을 잃은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고양이 군대를 모아 쥐 떼와 격전을 벌이며 생존을 모색한다.

제3자의 눈을 통해 요지경 인간 세상을 꼬집는 작가의 장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 섞인 깃발이 걸린 큰 건물(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총)를 겨눠 쓰러뜨린다. 나탈리는 기분이 좋을 때는 쓰담쓰담해 주지만 함께 사는 앙고라 수고양이 펠릭스의 땅콩(고환)을 떼버려 사랑도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초반에는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이 앙증맞은 웃음을 선사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사태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 인간과 고양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도 흥미롭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등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 역시 눈길을 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헤어볼(몸을 다듬다 삼킨 털이 뭉친 것)을 뱉는 등 고양이의 특징과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더 반가울 듯하다.

다만 인간뿐 아니라 개, 고양이, 곤충 등 여러 종(種)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수업하듯 직설적으로 표현해 공감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점은 아쉽다. 바스테트가 득도(?)의 경지에 이르며 영혼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설정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느낌이 든다.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에둘러 썼다면 작품의 힘이 더 커졌을 것 같다.

고양이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는 역사를 소개할 때 한국을 언급하고, 작품을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 리스트의 맨 위에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베토벤 소타나’를 배치한 데에서 한국 독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원제는 ‘내일은 고양이’라는 뜻의 ‘Demain les chats’.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양이#베르나르 베르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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