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따스한 시선으로 그린 인간의 욕망과 상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베어타운/프레드릭 배크만 지음/이은선 옮김/572쪽·1만5800원·다산책방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저자의 이번 신작은 사뭇 결이 다르다.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유머가 담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가슴 찡한 코미디 연기를 주로 했던 배우가 진지한 캐릭터로 변신한 것 같다고 할까.

숲과 눈에 뒤덮여 긴 겨울을 보내는 베어타운은 일자리가 줄어들며 나날이 쇠락해 가는 마을이다. 사람들은 전국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우승에 희망을 건다. 척박한 환경에서 신화를 이루면 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보이며 새 아이스링크를 지어주고 콘퍼런스센터, 쇼핑몰을 건설해 마을이 살아날 수 있다고 꿈꾼 것.

베어타운은 인간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꺼리지 않는 코치 다비드와 과정을 강조하지만 구닥다리 노인 취급을 받는 코치 수네는 성공 지상주의와 올바른 성장을 상징한다. 그러다 하키팀 에이스로, 왕자처럼 군림하는 부잣집 아들 케빈이 하키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마을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인다. 공동체는 갈가리 찢겨지고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갖가지 상처와 사연을 지닌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세밀하게 묘사해 이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한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몰입도를 높인다. 어디나 존재하는 권력 관계와 시기 질투, 사건이 터지게 만든 구조적 요인도 설득력 있게 그렸다. 끝을 알 수 없는 욕망과 이기심, 모순이 단단히 똬리를 튼 인간 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따스하다. 언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벚나무처럼 희망 한 자락을 살포시 남겨 놓았다. 인생살이의 핵심을 예리하게 담아낸 문장들에는 오래 눈길이 머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베어타운#프레드릭 배크만#이은선#오베라는 남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