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스포츠]‘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 이번엔 영화배우로 변신?

임보미기자 입력 2018-03-26 15:58수정 2018-03-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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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대표팀을 ‘패럴림픽 동메달’로만 알고 있다면, 정승환(32·강원도청)을 ‘빙판 위의 메시’로만 알고 있다면, 당신은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를 볼 자격을 갖췄다.

영화는 2012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에 나선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상영관을 찾지 못해 개봉이 미뤄지다 패럴림픽을 앞두고서야 빛을 봤다. 23일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시사회를 앞두고 만난 정승환은 “영화 속에는 제가 20대예요”라며 웃었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 주연배우 정승환?

“저희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영화에요. 저희 추억이 모두 담겨있는 영화고.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를 다시 뵐 수 있는 영화고요.” (그의 아버지는 2014년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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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당시에는 그게 영화가 될 줄도 몰랐어요. 그간 찾아왔다 금방 다시 가곤 했던 여러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거부감에 카메라도 피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찍으시더라고요. 1년 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이 됐어요. 대회 때도 워낙 저희 응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촬영하시는 분들이 엄청 크게 응원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웃음). 패럴림픽 개막 직전에 개봉을 해서 저희가 그간 별 도움을 못 드렸는데 이제 대회도 끝났으니 저희가 이제 감독님 좀 도와드려야죠.”

4강을 목표로 했던 선수들이 은메달을 따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는 개봉 후 벌어졌다. 젊음을 모두 바쳐 꿈꿔왔던 패럴림픽 메달을 목에 걸고 다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승환은 메달을 딴 지 일주일도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늘 적막 속에서만 뛰던 이들은 안방 패럴림픽을 앞두고 2002년 월드컵 당시 응원소리를 틀어놓고 훈련하며 처음으로 ‘뜨거운 응원을 받는 경기’를 준비했다.

“이번에 좋은 성적 거두고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던 게 정말 응원의 힘이예요.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까지만 해도 늘 장애인아이스하키는 여자 하키장에서 열려서 경기 규모가 작았어요. 그런데 평창에서 남자경기장에서 한다고 해서 부담도 됐어요. ‘저 큰 경기장을 채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이미 강릉에서 세계선수권 해봤을 때 너무 크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은 관중 분들이 오셔서 힘내라고 해주시니까….”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은 어렸을 적 나처럼 앉아만 있지 않았으면

처음 썰매에 앉은 지 14년 만에, 이제는 40대가 된 형들과 10년 넘게 땀 흘려 손에 쥔 패럴림픽 메달이다. 영상디자인과에 진학해 3D 맥스 영상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던 새내기의 인생은 “이번에 하키 하면 일본간대, 해보지 않을래? 주말에 두 시간 정도만 가면 돼”라던 기숙사 룸메이트의 말과 함께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그의 룸메이트는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이종경이었다.

“제가 다리를 어렸을 때 다쳤잖아요. 그러다보니 체육시간마다 늘 구경만 하는 아이었어요. 남들 뛰는 걸 보기만 했는데 직접 할 수 있다는 걸 듣고 가서 보니 신기했죠. 처음 타 봤을 때 사실 허리가 너무 아팠는데 링크장 안에서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형들은 다 제가 일찍 그만둘 줄 알았대요. 제가 워낙 내성적이라 하키장에서 거의 말을 안했거든요.”

이종경은 “저 친구가 운동을 이렇게 무섭게 할 줄 몰랐어요. 운동 조금만 하면 ‘형, 가슴이 너무 아파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그랬었거든요. 얘가 어려서부터 한번도 달려본 적이 없으니까 심장이 뛰고 이런 걸 못 느껴봤던 거예요”라고 그 때를 돌이켰다.

지금도 축구 보는 게 가장 큰 취미일 만큼 축구를 좋아하지만 정승환은 중학생이 될 즈음부터는 늘 친구들이 축구공을 차는 모습을 앉아 구경만 했다.

“초등학생 때는 야구, 축구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놀았는데 중학생이 되니 사춘기가 왔는지 안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모습 보여주기가 싫었어요. 제가 지금도 수영을 못 해요. 다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가 처음 남들 앞에서 다리를 드러낸 것도 순전히 하키 때문이었다.

“링크장에 가면 옷 갈아입어야 하는데 탈의실이 없거든요. 의족을 빼고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에 복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사람은 없는데 의족만, 휠체어만 놓여져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화장실가서 갈아입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계속 운동하면 사진도 찍히고 하는데 보면 다리가 없잖아요. 그런 모습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지금은 여름에 반바지 입고 다녀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죠.”

하키를 만나 처음으로 심장이 요동치는 떨림을 느껴본 정승환은 그래서 더더욱 유소년 지도에 관심이 많다.

“제가 어렸을 때 운동을 못 해봤잖아요. 지금도 장애입고 밖에 못나오고 운동 시작하지 못하는 친구들 많거든요.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접하게끔, 굳이 대표팀 안 가더라도 취미로라도 장애인 스포츠를 접하게 해주고 싶어요.”

정승환은 다음달 7일 춘천CGV 2시 시사회에서도 동료들과 관객들 앞에 설 예정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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