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 아이들에 음악의 구원 주고 떠나다

주성하 기자 입력 2018-03-26 03:00수정 2018-03-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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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스테마’ 창립 아브레우 별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2009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며 연설하는 모습. 사진 출처 폴라음악상 홈페이지

빈곤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 시스템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의 창립자인 베네수엘라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25일(현지 시간) 타계했다. 향년 79세.

아브레우 박사는 1939년 베네수엘라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파이프오르간 등을 연주했고, 작곡과 지휘하는 법을 익혔다. 한때는 대학에서 경제 및 법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지만 이내 베네수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성장 환경에 눈을 돌렸다.

197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에선 음악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돼 있었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뛰어난 음악적 재능에도 꿈을 이루지 못해 방황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36세였던 1975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엘시스테마의 첫걸음이었다. 마약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은 클래식 교육을 통해 점차 협동과 이해를 배우게 됐고, 방황을 접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2년 뒤 아브레우 박사는 이렇게 키운 최초의 청소년 악단 ‘호세 란다에타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을 이끌고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공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때마침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돼 국가 예산이 급증하게 되었고, 정부도 엘시스테마의 긍정적 면에 주목해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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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스테마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만 30만∼40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음악 교육을 하고 있다. 또 남미 이웃 국가들은 물론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엘시스테마 시스템을 받아들여 빈곤층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나눠주고 무료로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한국판 엘시스테마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아브레우 박사는 2010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했을 당시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협동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엘시스테마 창립 목적을 밝혔다. 그는 엘시스테마에 대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까지 참여해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마약과 폭력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사례는 없다”고 평가했다.

에르네스토 비예가스 베네수엘라 문화장관은 25일 트위터를 통해 “음악인들과 모국 베네수엘라는 선생님을 잃은 걸 깊이 슬퍼한다”고 추모했다. 훌리오 보르헤스 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도 “베네수엘라는 40여 년에 걸쳐 걸출한 음악인들을 길러낸 오케스트라 시스템 창설이라는 그의 특별한 업적에 빚지고 있다”고 애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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