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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세브란스 화재 사상자 ‘0’… 기본이 달랐다

입력 2018-02-05 03:00업데이트 2018-02-05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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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참사와 너무 다른 화재대처
크게보기그래픽 김성훈 기자
3일 오전 7시 57분경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천장에서 분수처럼 물이 쏟아졌다. 화재가 감지되자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이다. 1분 뒤 방화셔터가 ‘윙’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대형 로비와 연결되는 통로가 차단됐다. 비상계단 방화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같은 시간 병원 직원들은 환자와 보호자를 비상계단으로 안내했다. 2중 방화문 덕분에 대피 중 연기를 마신 사람은 없었다. 위층의 병동 간호사들은 수건에 물을 적신 뒤 병실 문틈을 막았다. 모두 불이 난 지 5분 이내에 이뤄진 조치였다.

○ ‘경보-피난-소화’ 모두 완벽했다

이날 화재는 2005년 세브란스병원 본관 신축 이후 처음 발생한 것이다. 출입구 연결통로가 전소될 수준의 불이었다. 완전 진화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경미했다. 환자 8명이 약간의 연기를 마셨다. 방화시설과 비상시 대응까지 모두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던 결과다. 지난달 26일 41명이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와는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불이 난 곳은 본관 3층 푸드코트 피자전문점이다. 피자를 굽는 화덕 위 연기 배출구에서 시작됐다. 경찰 관계자는 “화덕의 불씨가 기름찌꺼기에 엉겨 붙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화염과 연기는 천장 배관시설을 통해 약 60m 떨어진 5번 출입구 연결 통로로 번졌다. 토요일이라 수술은 없었다. 하지만 본관 전체에 환자 1100여 명이 있었다. 불이 난 3층 초진 등록처에도 환자와 보호자가 있었다. 만약 불이 번졌다면 세종병원보다 더 큰 피해가 우려됐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의 대처는 처음부터 달랐다. 화재 직후 병원 내 소방시스템이 이상신호를 감지했다. 동시에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가 차례로 작동했다. 화염과 연기가 다른 공간으로 퍼지는 걸 막았다. 반면 세종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1층 방화문이 없어 화염과 연기가 순식간에 전체 건물로 퍼졌다.

불이 꺼진 뒤 세브란스병원 내부를 둘러본 결과 피난계단에서는 그을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닫혀 있던 방화문 덕분에 연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각 방화문에 ‘물품 적치를 금한다’ ‘고정 장치를 부착하면 안 된다’고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화재 감지와 동시에 자동으로 작동을 멈췄다. 병원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을 내보낸 뒤 추가 탑승을 막았다.

○ 비결은 실전 같은 훈련

의료진 역시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평소 훈련 덕분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우선 화재 신고가 즉시 이뤄졌다. 보안직원은 화재 감지 3분 만인 오전 8시 병원 소방대에 화재를 알린 뒤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병원 전체에 화재경보 ‘코드레드’가 발령됐다. 세종병원은 직원들이 119 신고 전 자체 진화 등으로 우왕좌왕하면서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2015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화재 대피 훈련. 수술 중 환자와 의료진이 대피하는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연세의료원 제공
본관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등 직원 500여 명은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다. 이들은 불이 난 서쪽의 1병동 환자 307명과 보호자 등 400여 명을 피난계단과 반대편 2병동으로 대피시켰다. 9층 내·외과 중환자실 환자들은 2병동으로 이동한 뒤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11층 병실에 입원한 90세 노모와 함께 대피한 이모 씨(56)는 “간호사들이 층마다 배치돼 환자들을 비상계단으로 안내했다. 안내가 체계적이어서 침착하게 내려갔다”고 말했다.

응급실 환자 31명 중 2명은 이동형 생명유지장치가 연결된 상태에서 곧바로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침대에 누운 그대로 옮겨졌다. 세종병원 화재 때는 다수의 환자가 대피 과정에서 호흡기 등 생명유지 장치가 분리돼 이송 도중 숨졌다.

세브란스병원은 매년 실제 화재 상황을 가정해 한 차례 이상 자체 훈련을 했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청소부 등 용역업체 직원까지 예외 없이 참여한다. 소화기 사용부터 비상구 대피 요령, 환자 상태별 이송 방식 등을 실제와 똑같이 훈련한다”고 말했다. 또 구청과 소방서가 참여하는 합동훈련도 한다. 정문호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은 “합동훈련을 통해 소방관들이 병원 구조를 상세히 알게 돼 발화지점을 신속히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시된 소방점검 기간도 총 48일이었다.

3일 세브란스병원 화재 당시 20층 병동에 있었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화재 발생부터 대피 등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의료진의 침착한 대처가 큰 화를 막았다"고 말했다. 정현우 기자 edge@donga.com
화재 당시 입원한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옥상으로 대피했다. 박 의원은 “간호사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병실 문틈을 막았다. 화재를 겪으니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안보겸·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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