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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동아광장/이우영]졸업생을 위한 졸업식이 되려면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입력 2018-01-20 03:00업데이트 2018-01-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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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꾸벅 졸게 만드는 뻔한 졸업축사는 그만
촌철살인과 솔직함 담긴 로버트 드니로 연설처럼
졸업생이 주인공되는 품격있는 축제의 장으로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교단 위의 신춘(新春)은 졸업식으로 시작해 입학식으로 이어진다. 이즈음이면 오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 중국 영화. 황량한 오지에 지어진 학교의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스스로 지은 첫 가르침을 아이들과 함께 낭송한다.

“세상을 살려면 기개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살려면 배워야 한다.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고, 셈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큰 일 작은 일 모두를 기록하며, 고금을 알고 천하를 알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어 하는 마지막 수업에서 메아리쳐 울려 퍼지는 합창이기도 하다.

학업의 근간을 이처럼 간명하고도 쉽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번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다. 자라면서는 졸업생으로, 나이 들어선 아이들의 졸업식에 선다. 그러나 가슴에 새길 만한 졸업축사가 그리 선연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더욱이 사회 현실이 고단해져서 그런지 과거의 감동을 찾아보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단한 일이건 작은 일이건 명예로움과 분별에 확신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포기’를 받아들이지 말라(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윈스턴 처칠은 옥스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어려움에 처한 영국 국민과 연합군에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일으켰고, 이는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가장 짧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몇 해 전 아들의 고교 졸업식을 찾았다. 이 학교는 인근 교회 예배당을 빌려 졸업행사를 치르는데 졸업생 모두가 영화 ‘해리포터’처럼 세련된 둥근 모자와 초록색 가운을 걸치고 선생님들과 나란히 앉아 석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행사 가운데 학교를 빛낸 선배 몇 분의 축사가 있었는데, 가장 큰 박수와 열광을 받은 연사는 명문대 교수도 아니고 경륜의 정치인도 아닌 고난과 실패를 딛고 유명인이 된 어느 탤런트의 축사였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살아가며 시계를 보지 마시고 나침반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학을 네 번 떨어지고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수없는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항상 잊지 않은 것은 내가 진정으로 가야 할 ‘방향’이었습니다.” 5분 이내의 연설이었지만 지금까지 기억된다.

졸업식은 더 넓은 배움의 세계 또는 직업의 사회로 새롭게 출발하는 엄숙하고도 귀한 다짐의 시간이 돼야 한다. 학교나 학교 관계자들을 위한 형식적 행사가 아닌 졸업생이 주인공이 돼 모두가 능동적으로 함께하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졸업식의 품격은 초청 인사의 축하 강연에 있다. 서구 대학들의 축사를 보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의 연설에는 참석한 내외 귀빈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지루하게 하는 의례적 인사말이 없다. 원고를 보지 않고 모든 이와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강연을 한다. 자신이 헤쳐온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위주로 며칠을 고심하며 스스로 메시지를 구상하고 다듬기 때문이다.

2015년 뉴욕대 티시스쿨에서 행한 로버트 드니로의 졸업 강연은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엿 됐습니다(Graduate. you made it. And, you’re fucked)”라는 파격으로 시작해 “평생 기다리고 있는 ‘거절의 문’을 넘어 결국 해낼 것을 믿고 행운을 빈다. 다음에(next) 말이다.” 그의 촌철살인 메시지는 그해 최고의 연설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전통 속의 우리 졸업식은 입학과 배움 모든 일의 연유를 선현에게 고하는 고유례(告由禮)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기록돼 있다. “지극한 정성을 모아 경(敬)의 퇴계 선생님, 영(營)의 율곡 선생님, 용(用)의 다산 선생님, 근원이신 유(儒)의 공자 선생님께 아룁니다.” 이런 식으로 졸업의 연유를 아뢰고 세상에 나아감을 고했다. 오늘 남쪽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 옛 서당의 졸업이었던 ‘세책례(洗冊禮)’를 되살리고 있다는 소식도 이채롭다.

시대가 바뀌고 형식은 달라져도 졸업생과 스승이 함께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격려하는 참모습의 졸업식을 많이 보고 싶다.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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