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도 아쉬움도 아듀! 2017… 보통사람들이 꼽은 ‘올해, 이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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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손미애 씨 “배 속에 품은 둘째를 만난 그날”
조근순 할머니, 일흔 넘어 배운 알파벳… “우울증마저 날렸어요”

행복도 두 배 손미애 씨가 29일 집에서 세 살배기 딸 혜연이(왼쪽)와 4월에 태어난 효준이를 몸에 
태웠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활짝 웃고 있다. 동생이 생겨 의젓해진 딸, 열 달간 품은 아들, 그리고 남편 덕분에 손 씨는 
“행복과 사랑을 느낀 2017년이었다”고 말했다. 나라는 요동쳤을지언정 보통 사람들은 가족의 품에서 안식을 찾은 한 해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행복도 두 배 손미애 씨가 29일 집에서 세 살배기 딸 혜연이(왼쪽)와 4월에 태어난 효준이를 몸에 태웠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활짝 웃고 있다. 동생이 생겨 의젓해진 딸, 열 달간 품은 아들, 그리고 남편 덕분에 손 씨는 “행복과 사랑을 느낀 2017년이었다”고 말했다. 나라는 요동쳤을지언정 보통 사람들은 가족의 품에서 안식을 찾은 한 해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17년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365장의 사진으로 책상에 늘어놓는다. 사진들 속 기억이 나의 한 해를 완성한다. 특히 손이 가는 한 장이 있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올해의 순간을 보통 사람 12명에게 물었다.

손미애 씨(30·여·경기 시흥시)는 “둘째 효준이가 배 속에 있던 열 달이 올해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세 살배기 첫딸 혜연이는 불룩한 엄마 배를 쓰다듬으며 동생 ‘행복이’(태명)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들려줬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를 돕겠다며 빨래를 개고 바닥을 닦았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비로소 가족이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 씨는 “‘독박육아’를 미안해하며 살림을 돕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에게 가족의 탄생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방송사 9년 차 아나운서 김예솔 씨(32)는 ‘좋은 엄마’를 꿈꾼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몰두했다. 아기는 불현듯 그의 삶에 끼어들었다. 배 속에서 아기 ‘데이’(day·태명)가 움직일 때 설렜다. 데이를 만난 5월 12일, 난생처음 겪는 고통과 인생 최고의 감동을 느꼈다. 남편은 펑펑 울었다.


첫 성취의 기쁨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강원 춘천기계공고 자동차과 2학년 허창녕 군(17)은 15일 첫 자격증 합격 통보를 받았다. 자동차보수도장기능사가 된 것이다. 손상된 차체를 수리하거나 교체한 뒤 도색(塗色)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한 해 빨리 손에 쥐었다. “연말에 합격해 2017년을 어느 때보다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허 군의 또 다른 목표는 지게차운전기능사와 자동차정비사 자격증이다.

19세 유주안 씨는 6월 25일을 잊을 수 없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프로축구 K리그 강원과의 경기는 그의 1군 데뷔전이었다. 수원 삼성 소속의 유 씨에게 프로의 벽은 두꺼웠다. 주목하는 이가 별로 없는 R리그(2군 리그)에서 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눈여겨본 감독은 그를 1군으로 불러 올렸다. 1골 1도움. 유 씨는 “골을 넣었을 때 웅크렸던 마음이 단번에 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봉사의 온정은 받는 이보다 주는 사람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부산 사상구에서 칼국숫집을 하는 박기대 씨(45)는 이달 8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년간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것이다. 2002년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허드렛일을 1년 하며 배운 칼국수로 2011년 승부를 걸었다. 박 씨는 “기부는 지금처럼 부지런하게 살기 위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1991년부터 광주 남구 서동 무료급식소 ‘사랑의 식당’ 주방에서 봉사하는 유효종 씨(61). 매주 세 번씩 이곳에서 설거지를 한 지 20년이 된 올해가 바로 그 순간이다. 미용재료 가게를 하는 유 씨는 “봉사는 생활의 만족을 주는 활력소”라며 자축했다.

‘사람은 평생 한 번 산다’는 욜로(YOLO). 인생은 짧으니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라는 자극이다. 하지만 노년에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이야말로 욜로의 참뜻 아닐까.

올해의 순간 [1]칠순 넘어 영문과 한글을 깨친 조근순 씨 [2]아기가 태어나 가족을 완성한 김예솔 씨 가족 [3]20년째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유효종 씨 [4]춤에 대한 열정을 되찾아 재취업한 정재경 씨 [5]프로축구 1군 무대에 데뷔한 19세 유주안 군 [6]나이를 잊고 근육질 몸매를 만드는 김영환 씨
올해의 순간 [1]칠순 넘어 영문과 한글을 깨친 조근순 씨 [2]아기가 태어나 가족을 완성한 김예솔 씨 가족 [3]20년째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유효종 씨 [4]춤에 대한 열정을 되찾아 재취업한 정재경 씨 [5]프로축구 1군 무대에 데뷔한 19세 유주안 군 [6]나이를 잊고 근육질 몸매를 만드는 김영환 씨
조근순 씨(72·여)는 서울 영등포구청의 ‘중학교 예비반’에서 영어를 배웠다. 영어 알파벳을 알게 되자 간판의 꼬부랑글씨를 읽게 되고 영화관에서 자리 찾기도 쉬워졌다. 2008년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갖게 된 우울감은 배움을 통해 벗어던질 수 있었다. 김영환 씨(70·서울 송파구)는 근육질 몸매를 목표로 세우고 첫 덤벨을 들던 날을 기억한다. 동네 헬스장에서 매일 1시간 넘게 근육을 키웠다. 배와 팔에 근육이 붙었다. 김 씨는 “100세 시대를 실감한다. 지금도 운동을 하기에는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경을 헤쳐 나온 순간은 가슴 깊이 새겨진다. 김경원 씨(50)는 이달 10일 ‘제6회 대구시수영연맹회장배 전국 장거리 수영대회’ 자유형 800m 부문에서 13분4초로 우승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7cm가량 짧은 지체장애 4급.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년 전 수영을 시작했다. 대구 서구에서 안경전문점을 하는 김 씨는 “비장애인과 당당히 경쟁해 입상한 성취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며 웃었다.

성균관대 학생 박민수 씨(26)는 공동 창업한 스타트업 ‘칼라콘택트’ 설립 3년 차를 넘긴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벤처기업의 초기 투자가 고갈된다는 3년 차,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불리는 시기를 넘긴 스스로가 대견하다. 건설노동부터 카페 아르바이트, 공연기획까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 박 씨는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 깔고 잤는데 지금은 근처에 방을 빌려 밤낮 없이 일한다”며 웃었다.

인생 2막은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조수연 송파글마루도서관장(47·여)은 올 초 공모를 통해 도서관장이 됐다. 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에서 사서로 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누구나 자기 집처럼 머물 수 있는 도서관을 지향한다.

1월 ‘취업 전쟁’을 뚫고 입사한 정재경 씨(27)는 7월 퇴사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울 때 대학교류 축제기획단에서 춤 공연을 요청받았다. 춤에 빠져 지내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후배들을 이끌고 한 달간 연습에 집중했다. 9월 23일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냈다. 정 씨는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내 열정을 되살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재취업에 성공했다.

정서은 씨(28·여)는 홍콩에서 열린 26년 지기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선 9월 30일을 최고의 날로 꼽았다. 정 씨는 “내가 친구 인생의 귀중한 순간을 장식했다는 기분에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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