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의 소박한 서민음식, 이제는 글로벌 인기 메뉴

김재범 전문기자 입력 2017-10-26 13:17수정 2017-10-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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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에야 마스터 산티 알뮈나가 닭고기, 홍합, 새조개, 가재, 완두콩, 깍지콩 등의 재료를 사용해 스페인 전통 방식으로 만든 클래식 파에야. 사진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주말미식]스페인의 소울푸드, 타파스와 파에야

중세까지 올라간 오랜 기원, 다양한 나라서 즐겨
우리네 식문화와 비슷, 국내 최근 전문점 많아져
전통에 셰프 창의성 더해 파인 다이닝으로 진화중

한국의 비빔밥과 불고기, 일본의 라멘과 스시, 태국의 똠양꿍과 팟타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어느 나라든 그 곳의 정체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들이 있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값비싼 식재료를 쓰거나 특별히 어렵고 화려한 조리법이 요구되는 음식은 아니다. 그 나라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맛과 향기, 모양과 담음새에 그들의 삶과 정서가 속속들이 배어 있는 음식들이다.

유럽의 스페인은 연간 방문객이 세계 3,4위를 다투는 관광대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인은 스위스 등과 함께 매년 여행객이 크게 증가하는 인기 국가이다. 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아마 열 중 일곱, 여덟은 타파스(tapas)와 파에야(paella)를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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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방인 여행객들이 타파스와 파에야를 먹으면서 비로소 “아, 내가 마침내 스페인에 왔구나”라는 여행의 객창감을 만끽한다. 때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서도 스페인 여정의 아련한 느낌을 기억에서 소환하고 싶을 때 추억의 촉매제로 타파스나 파에야를 찾는다.

전통적인 스페인 토티야를 부드러운 식감으로 변형해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을 곁들인 헥토르 로페즈의 타파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600~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대표 음식

타파스는 작은 접시에 한 입, 또는 두 입 분량의 요리를 담아 내놓는다. 이름은 ‘상자, 병, 솥의 뚜껑이나 덮개’란 뜻을 지닌 스페인어 ‘tapa‘에서 유래됐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설이 여러 가지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서울의 스페인 팝업 레스토랑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타파스 마스터 헥토르 로페즈가 소개한 “술을 마실 때 파리 같은 벌레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주가 담긴 접시를 술잔 위에 올린 것에서 유래됐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설이다.

파에야는 커다란 프라이팬이나 냄비에 쌀과 해물 또는 고기를 넣어 함께 요리한 스페인식 쌀요리다. 발렌시아 향토음식에서 출발했는데, 파에야란 이름 자체가 발렌시아어로 ‘양쪽 손잡이가 달린 넓고 얕은 프라이팬’을 말한다. 우리네 돌솥 비빔밥이나 해물 뚝배기와 같은 형식의 요리인 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요리 모두 소박한 서민음식이 출발점이다. 타파스는 선술집에서 술과 곁들여 먹기 위해 빵 위에 햄을 얹어 내놓던 한입 음식이 기원이다. 파에야도 시골 농부나 어부들이 쌀에 지역 특산물이나 배에서 잡은 생선을 넣어 요리한 것에서 유래했다.

기원은 소박하지만 역사는 꽤 깊다. 파에야의 경우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40년부터지만, 요리 자체는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인들이 쌀을 전파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타파스도 마찬가지다. 멀리는 13세기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 때 등장했다는 주장부터 16세기 카스티야 지방 식당에서 유래했다는 설까지 있으니 짧게 잡아도 600년이 훌쩍 넘는다.

스페인의 향토음식이던 타파스와 파에야는 이제 글로벌 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타파스는 파티 음식으로 미국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파에야는 스페인 외에 유럽 다른 나라나 스페인 문화권의 남미 지역에서도 원래 스타일 그대로 또는 지역 특성에 맞춰 변화된 모습으로 접할 수 있다.

스페인 팝업 레스토랑을 위한 플레이팅을 하고 있는 타파스 마스터 베니그노 쿠소(왼쪽)과 파에야 마스터 산티 알뮈나. 사진제공|포시즌스호텔서울

● 한국 온 타파스 파에야 마스터, 통념 깬 과감한 스타일 눈길

경쟁이 치열한 국내 외식업계에서도 타파스와 파에야는 제법 인기가 높은 테마이다. 사실 타파스는 안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술문화에서 보면 친숙한 요리이고, 파에야는 아예 모양새부터 해물 볶은밥을 연상시킨다. 정서적으로 다른 것보다 거리감 없고 편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타파스 전문점’을 검색하면 서울만 해도 이태원, 경리단길, 논현동, 서촌, 홍대, 서울대입구역 사로수길 등 맛집 블록으로 유명한 동네들이 두루 등장한다. 강남 트렌드세터와 한류팬들에게 인기 높은 청담동의 ‘SMT서울’은 타파스를 테마로 캐주얼 다이닝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일품요리(알라 카르데)와 코스 요리로 메뉴를 개발해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서울은 25일부터 4일간 일정으로 ‘스페인 팝업 레스토랑’을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국내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파에야와 타파스 마스터 세 명이 함께 방한, 본고장의 타파스와 파에야를 소개하고 있다.

헥토르 로페즈와 베니그노 쿠소 등 두 명의 타파스 마스터들은 이번 팝업 레스토랑에서 주키니 누들과 소이펄을 곁들인 관자, 베이컨을 가미한 스패니시 토티야 등 8종의 창작 타파스를 내놓았다. 파에야 마스터 산티 알뮈나도 김치로 맛을 낸 문어 관자 파에야를 비롯해 클래식 파에야 등 전통부터 퓨전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다섯 가지 파에야를 선보였다.

행사에 앞두고 한국 기자들에게 일부 메뉴를 소개하는 자리도 있었다. 파에야 마스터 산티 알뮈나가 닭고기, 홍합, 새조개, 가재, 완두콩, 깍지콩 등으로 전통 방식을 충실히 따른 파에야를 선보인 반면, 두 명의 타파스 마스터들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른 과감한 스타일의 메뉴를 내놓았다. 헥토르 로페즈는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을 넣은 스페니시 토티야를 소개했는데, 토티야를 마치 무스처럼 부드러운 식감으로 대담하게 변형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베니그노 쿠소는 아몬드 비스킷 위에 올린 오리 가슴살을 선보였다. 망고와 생강을 절인 소스와 오렌지·레몬 쥬스로 만든 폼을 곁들여 이를 한꺼번에 먹도록 했는데, ‘한입 요리’라는 타파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을 추구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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