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우경화 맞선 ‘일본의 양심’ 아라이 교수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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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日전쟁범죄-책임 연구… 일본군 위안부 개입 증거 공개
한국 문화재 반환운동도 펼쳐

일본 내 우경화 흐름에 맞서며 한국 문화재 반환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사진) 이바라키(茨城)대 명예교수가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6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그는 19세 때 태평양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평생 일본의 전쟁범죄와 책임을 연구했다. 도쿄대 문학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이바라키대와 스루가다이(駿河台)대 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한국 문화재가 일본에 반출된 경위를 추적하고 반환을 촉구하는 활동에 적극 나섰다. 특히 2010년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총리가 궁내청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려 할 때 한국·조선문화재반환문제연락회의를 결성해 이를 뒷받침했다.

간 총리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회에서 동의하지 않아 난항을 겪자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가 “문화재는 태어난 자리에 있을 때 가치를 발한다”며 의원들을 설득해 반환을 성사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노력으로 조선왕실의궤 등 귀중한 서적 1205권이 2011년 12월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이듬해 펴낸 저서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일본 지배층이 점령 시절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조직적으로 문화재 약탈을 자행했음을 밝히고, 이를 돌려줌으로써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한일 간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사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족적을 남겼다. 1993년 ‘일본전쟁책임자료센터’를 설립했으며 2005년에는 을사늑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를 발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거진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2001년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우익 교과서가 나오자 “교과서에 거짓말을 쓰는 나라, 특히 이웃 국가에 대해 거짓말을 쓰는 나라는 망한다”고 일갈했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93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조직적 개입을 입증하는 업무일지 60점을 찾아내 공개한 것도 그였다. 최근에는 모토오카 쇼지(本岡昭次) 전 참의원 부의장과 함께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 공동대표를 맡아 일본 측의 법적 조치를 촉구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해서는 “나치즘을 떠올리게 한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5월 담낭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라이 신이치#한국 문화재 반환운동#일본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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