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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부형권]‘IMF 적폐’도 청산해 주오

입력 2017-10-14 03:00업데이트 2017-10-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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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경제부 차장
“6·25전쟁 때는 떨어지는 포탄만 안 맞으면 살아남았는데 요즘은 그냥 앉아서 죽게 생겼어.” 1998년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전세보증금소송 조정(調停) 심문장. 사무실 보증금(3000만 원)을 빼달라는 40대 세입자와 마주 앉은 80대 집주인이 한탄한다. 1997년 말 몰아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난데없이 떨어진 포탄 같았다. 세입자는 전세금이 싼 곳으로 옮겨 생활고(生活苦)를 덜어야 했지만 집주인은 내줄 보증금도, 새로 들어올 세입자도 없었다. 이른바 IMF형 임대차분쟁. “내가 세입자였을 땐 전세금은 오르기만 했어. 세 들어 사는 설움을 피땀과 눈물로 이겨냈는데, IMF가 내 ‘공든 탑’을 무너뜨렸어.” 당시 법원 출입하던 기자는 집주인들의 이런 탄식을 많이 들었다.

영장실질심사 법정엔 IMF형 범죄가 넘쳐났다. 남의 물건을 슬쩍한 ‘바늘 도둑’이 많았다. 서울 시내 절도사건이 1997년 1월 772건에서 1년 만(1998년 1월)에 1053건으로 36.4%나 증가했다. 지하철 선반 위 손가방을 훔치다가 붙잡힌 20대 실직자는 “(IMF 때문에) 밖에선 할 일도 없다. 구속시켜 달라”고 했다.

동란(動亂)보다 IMF가 더 힘들다는 80대 집주인, 사회보다 감옥이 더 낫다는 20대 절도범의 하소연은 지나친 엄살이 아니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진단도 비슷했다. “IMF 충격 강도는 파괴 측면에서는 6·25전쟁에 못 미칠지 모르지만 세상을 완전히 바꾼다는 점에선 그에 뒤질 게 없다. 전쟁 땐 남들이 피란을 가면 그대로 따라가면 됐는데, IMF 사태는 사람마다 행동패턴이 달라서 도대체 누굴 따르면 되는 건지 갈피를 못 잡는다.”(연구서 ‘IMF 충격, 그 이후’·1998년 6월 출간)

나라 금고가 바닥나고, 평생직장이던 기업이 망하고, 일하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실직했다. 국가도 회사도 가장(家長)도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의지할 데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 귀결은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

“1970년대부터 IMF 직전까지는 삼성 현대차 LG 같은 대기업 직원이 최고 신랑감이었다. 그러나 IMF는 직업 안정성을 결혼 시장의 최고 가치로 만들어버렸다. 의사 변호사 같은 자격증 전문직과 잘릴 걱정 없는 공무원의 양강(兩强) 체제는 IMF 직후부터 20년간 계속됐다. 앞으로도 깨지기 쉽지 않다.” 12일 통화한 결혼정보회사 ‘선우’ 이웅진 대표(52) 설명이다. 서울 명문대 자연·공과계열 합격자 중 적지 않은 수가 복수 합격한 지방대 의대로 최종 진로를 정하는 오늘날 현실이 이와 무관할까. 입시 전문가들은 “국가·사회적으로는 걱정스러운 현상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지극히 합리적 결정”이라고 말한다. 각자도생해야 하니까.

문재인 정부 간판은 적폐 청산이다. 야당이 ‘정치 보복’ 운운하자 문 대통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懲毖·지난 잘못과 비리를 경계해 삼간다) 정신’을 강조했다. “류성룡 선생이 임진왜란 참상을 기록한 징비록을 남기셨는데 불과 몇십 년 만에 병자호란을 겪고 결국은 일제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얼마나 진짜 징비하고 있는지 새겨봤으면 한다.”

이왕 징비하는 김에 IMF 국난(國難)도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 몸과 마음, 정신 속에 쌓여 온 불안 불신 불만의 IMF 적폐를 씻어줬으면 좋겠다. 그게 어렵다면 류성룡 선생처럼 ‘IMF 징비록’이라도 제대로 남기자. 우리보다 나은 후세가 참고라도 할 수 있도록.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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