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정성은]‘돌+아이’면 어때 ㅋㅋㅋ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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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프리랜서 VJ
정성은 프리랜서 VJ
이상하다. 9, 10월에 왜 이렇게 생일이 많지?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았다.

“그게 다 크리스마스 때문이래.”

10월 1일 생일인 친구는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12월에 아이를 가지면 9월 말∼10월 초에 출산한다고. 역시 연휴는 길고 볼 일이다.

그런데 생일파티라니. 그런 건 초등학생 때 아니면 지드래곤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자 주위에서 한두 명씩 생일파티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작년에 스물아홉 살 생일파티를 한 것 같은데, 올해 또 굿바이 20대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도 목격했다. 경계에 선 사람들의 다급한 몸부림을 태연히 구경하다 어느덧 내 차례가 왔다. 어휴∼ 생일파티 같은 걸 어떻게 하냐고 손사래 쳤던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한 명이라도 저에게 생일파티를 하자고 제안하게 해주세요. 이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으로요.’

소원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사람들을 불러 놓고 뭘 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생일 욕심이 생겨버려서 멈출 수가 없었다. 4일 남겨두고 파티를 통보했다.

그사이 친구들은 연휴를 틈타 고향에 가버렸다. 오래 산 만큼 우정의 역사도 복잡해져 멤버 구성에 난항을 겪었다. ‘얘가 오면 얘랑 안 맞을 것 같은데…, 뭐야… 얘네는 절교했잖아….’ 결국 파티의 최종 멤버는 ‘명절날 제사 파업을 선언한 신혼부부’와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한 취업준비생’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이왕 하는 거, 생전 안 해본 걸 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돼보기?
 
<초대장> 제 생일의 콘셉트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 분해서 오기’입니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로 분해 오는 A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한 명씩 돌아가며 A에게 질문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요즘 어떤 책을 쓰고 계시죠?’ 이에 대한 답은 거짓으로 해도 좋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됩니다. 정하셨다면 그의 이름으로 오픈채팅방에 지금 바로 접속하세요.
 

다들 어이없어하더니 이내 적응했다.
“박보검 님이 입장했습니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촬영하느라 바빠서요^^;”
“나천재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누구…?”
“드라마 밀회에서 유아인의 채팅명입니다만….”

숨겨진 덕력은 빛을 발했고, 우리는 잠시나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내 생일엔 아이유도 오고 선재도 왔다. 홍상수 감독도 오고 김혜리 영화기자도 왔다. 차마 내가 어떤 역을 했는지는 부끄러워 말하지 않겠다. 물론 이 역할극은 오프라인에선 20분 정도 하다 망했다. 이상한 친구를 둬서 다들 고생이 많고,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설리가

영화 ‘우리의 20세기’에서 55세의 싱글맘 도로시는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생일파티를 한다. 본인이 사둔 케이크에 초를 꽂고 아들에게 건네며 “3분 뒤에 서프라이즈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고 나와”라고 속삭이는데, 그 모습이 웃기면서 짠해 키득거렸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녀가 되니 웃기기는 무슨, 짠하기는 무슨, 그냥 신날 뿐이다. 깜짝 축하를 해줄 기미가 안 보인다면 울지 말고 직접 하자! 우리네 삶에는 이벤트가 필요하니까!
 
정성은 프리랜서 VJ
#영화 우리의 20세기#우리네 삶에는 이벤트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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