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민병선]니키 공주와 14명의 난쟁이

민병선 국제부 차장 입력 2017-09-22 03:00수정 2017-09-22 10:0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강성 발언을 하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여자 존 볼턴’으로 불린다.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찍은 사진을 7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민병선 국제부 차장
미용사 손재주가 좋다고 소문난 한 미용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인 이곳에 겁 없는 이방인이 찾아왔다. 쭈뼛거리며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선 젊은 아빠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커트해 주세요”라고 했다. 이때 사랑방 리더 아주머니의 포효하는 듯한 외침. “여기 오늘 물 좋네.”

여성들이 많은 데 어리바리한 남자 하나가 끼면 바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성들 많은 데 야무진 여성이 있으면 그는 백설 공주가 된다.

얼마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무대에서도 백설 공주가 있었다. 그는 14명의 남성 사이에서 존재감이 단연 돋보였다. 그동안 북한 제재에 미온적이던 중국과 러시아의 대사 사이를 오가며 제재안을 조율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CNN 화면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국 그는 북한 핵실험 2주 만에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이끌어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45)다.

앞으로도 그는 한반도의 명운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영화 ‘겨울왕국’의 얼음 공주 ‘엘사’처럼 한반도에 냉기만 몰고 올지, 아니면 합리적 외교술로 북핵 문제 해결의 훈풍을 불러 올지 우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기사
미국 외교가에는 전에도 남성을 압도한 여걸들이 있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가 있다. 수전 라이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유엔 대사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이들은 모두 학계 출신이며 관료의 향기가 짙다. 반면 헤일리 대사는 정치인이다. 향후 미국 외교를 알려면 정치인 헤일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의 말투는 단호하고 논리는 단단하다. 4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장악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자 그는 안보리에서 공격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사진을 들고 시리아 정부와 공범으로 지목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그의 매서움을 엿볼 수 있는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

‘양심도 없는 사람이 이끄는 비합법적인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에게 6년 이상 말로 다 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를 해왔다. 만약 러시아가 시리아에 영향력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만나 시리아가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손써야 한다.’

헤일리 대사의 부모는 인도 펀자브주 출신의 이민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장학금을 받아 유학 온 부친은 부히스대에서 교수직을 얻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정착했다. 헤일리 대사는 클렘슨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가족이 운영하는 의류 회사에서 일하다 정치에 투신했다.

언변이 좋고 어릴 적 지역 미인대회에 나갈 만큼 외모가 괜찮았던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을 거쳐 2010년 주지사에 당선됐다. 당선은 센세이션이었다. 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지사였고, 당시 미국에서 최연소 주지사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미국에서 ‘딥사우스(Deep South)’로 불리는 남부의 핵심 지역이다. 보수주의의 아성인 이곳에서 여성에다 이민자 집안 출신이 공화당 후보로 나온 건 이변이었다. 당시 미 언론은 “소수 인종의 표가 필요했던 공화당과, 공화당 후보만 되면 당선을 확신한 헤일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주지사 시절 그는 공화당 출신답게 낙태 금지 규정 강화, 총기 사용 권리 확장 등 보수 어젠다를 밀어붙였다. 반면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소수 민족에 대한 권리 보호에도 앞장섰다.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인 남부연합 깃발을 주의회 게양대에서 내리기 위해 의회와 전면전을 벌이는 강단을 선보였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지역 언론은 그에 대해 “채찍에는 능하고 당근에는 소홀하다”고 평가했다. 주의회 관계자는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이 강하며 이를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구 스타가 된 건 2012년 공화당 전당대회다. 존 매케인 의원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선출한 이때 명연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트럼프 정부에서 장관급인 유엔 대사를 맡고 있지만 그는 원래 트럼프의 사람은 아니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마코 루비오 후보를 지지했으며, 밋 롬니 후보가 대선 후보로 뽑힐 경우 러닝메이트로 거론됐다. 경선 때 맹비난하던 트럼프 밑에서 요직을 꿰찬 걸 보면 수완이 보통은 아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인 헤일리에 대해 “계산된 과격함과 타협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존재감 없는 렉스 틸러슨을 대신해 그를 차기 국무장관으로 예상했다. 외모와 언변에 국무장관 경력까지 갖추면 다음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소수 인종으로 젊고 말 잘하는 ‘공화당의 오바마’가 나오면 백인 중심인 공화당 표의 확장성이 커질 수 있다. 미국 정치 무대에서 그의 여왕 등극을 상상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민병선 국제부 차장 bluedot@donga.com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여자 존 볼턴#남성을 압도하는 여걸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