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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송평인 칼럼]일방적인 문재인, 설득하던 노무현

입력 2017-07-12 03:00업데이트 2017-07-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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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말귀 못 알아들어 황당한 상황 만든 문 대통령
남 말은 귀 기울여 안 듣고 제 얘기만 하다 빚어진 결과
노무현은 설득하려고 했으나 문재인은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에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후 질의응답 과정에서 전혀 엉뚱한 답변을 했다. 한미관계에 대해 물었는데 한중관계에 대해 답한 것이다. 객석에서 지켜보던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당황해 단상에 뛰어올라가 귓속말로 뭔가 속삭이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상황을 파악하고 답변을 바로잡았다.

이 기사는 단 한 곳의 인터넷 매체에만 떠 있다. 지난 주말 한 지인이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유튜브의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 능력’이란 제목의 영상(youtu.be/7dAEOyUyCWM)이다. 직접 보니 해프닝 정도를 넘어선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영어로 50초 정도, 또 한국어 통역으로 그 정도 이어졌다. 질문자는 문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서도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러나 미국에 ‘노’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마지막에 “한미관계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간략히 물었다.


문 대통령의 답변은 2분 넘게, 영어 통역도 그 정도 이어졌다. 그는 한미관계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눈 회담 내용이 답변의 주(主)였다. 통역자는 엉뚱한 답변에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거렸고 질문자의 얼굴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답답하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객석에 앉은 외국 인사들이 6분 넘게 이어진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영상을 보면 금방 짐작이 갈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간혹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는 인상을 이미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받은 바 있다. 어느 후보가 서울지하철 구의역 참사 사건을 계속 언급하는데도 그가 못 알아들어 결국 그 주제는 넘어가고 말았다. 또 어느 후보가 당시 뉴스에 많이 등장하던 ‘Korea Passing(한국 제치기)’을 언급하자 이번에 진짜로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자신이 조의(弔意)를 표하기 위해 직접 다녀오기까지 한 구의역의 이름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을 수 있고, ‘Korea Passing’도 개념을 알면 되지 그 말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은 알아듣지 못할 수 없는 질문이다. 긴 사전 설명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답변을 회피하고 싶어 엉뚱한 대답을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김 부총리의 지적을 듣고 곧바로 한미관계에 대해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은 아니지만 몇 마디를 했다.

문 대통령에게 의학적 처방이 필요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것은 남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실수하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는 논쟁적인 사람이다. 남의 말을 반박하려면 말귀부터 정확히 알아들어야 하고 말하지 않은 것까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봤듯 가능한 한 토론을 피했다. 토론에서는 종종 질문과는 관련 없는 자기주장을 늘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혁하려고 했던 검찰의 검사들과도 토론을 해보자고 했던 사람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친북인사 송두율이 한국에 들어와 수사를 받자 왜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문 대통령은 독일 방문 중 부인 김정숙 여사를 시켜 친북인사 윤이상의 묘소에 참배하게 하면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반대자들이 생각하는 것까지 고려해 그것을 넘어서려고 노력한 반면 문 대통령은 남들 생각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듯 자기 할 소리만 일방적으로 선언하듯 하고 있다.

원전 정책은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탈(脫)원전을 내세웠다고 해서 함부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 같으면 원전 공사를 중단하기 전에 사회적 대토론을 제안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배심원제라는 누구도 익숙지 않은 제안을 던져놓고 공문 한 장 달랑 보내 공사 중단을 지시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참으로 다른 정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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