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의원 빼가기’ 비난하던 野 겨냥해 박희태 前국회의장이 처음 사용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1990년대 후반 변형용어 유행 정치권에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1996년 15대 총선 직후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관련해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맹공을 퍼붓자 ‘내로남불’로 응수했다. 박 전 의장은 “내가 창작한 말”이라고 했다.
다만 처음부터 내로남불이란 조어 형태로 사용된 건 아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불륜’ 대신 ‘스캔들’을 활용해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의 형태로 주로 쓰였다. 내로남불의 제1 전성기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내가 하면 숙달운전, 남이 하면 얌체운전’ ‘내가 못생긴 건 개성, 남이 못생긴 건 원죄’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땅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돼 크게 유행했다. 공통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중 잣대를 꼬집는 말들이었다.
2015년 7월 내로남불은 공식석상에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처음 등장한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던 전병헌 의원(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내 여야 갈등의 원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두고) 누리꾼들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내로남불을 인간의 본능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 이론이나 허구적 독특성(false uniqueness) 이론 등은 내로남불을 설명해주는 이론들이다. 결국 내로남불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아 붕괴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어 시스템 중 하나인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로남불 논쟁이 정치권에서 도돌이표 같은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로남불은 불가피한 인간의 본성인 동시에 한계”라며 “내가 한 사랑이 결코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닐 수 있고, 상대도 동일한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를 반성하고 또 그것을 포용할 수 있을 때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정치권의 내로남불 논쟁에선 반성과 포용이 빠졌다는 지적인 셈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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