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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MIT 3학년 기업 프로젝트 맡는데… 전공책만 보는 국내 공대생

입력 2017-03-31 03:00업데이트 2017-03-31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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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7주년/4차 산업혁명, 인재에 달렸다]<상> 한국 공대-MIT 전공수업 비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생명과학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은 기술 간 융합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혁명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해야 할 국내 공대들은 여전히 단일 전공지식에 집중한다. 1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주입식 교육 시스템을 바꾸자”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변한 건 없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누가 잘 키우고 있는지 미국과 한국 주요 공대의 교육과정을 최초로 비교 분석해 2회에 걸쳐 싣는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과 2학년 강지우 씨(20·여)는 1학년 때 전공기초 과목 6개를 들었다. 1학기엔 △생물학 △물리학 △화학, 2학기엔 △유기화학 △물리학 △미적분학을 수강했다. 유기화학은 1학년이 이수해야 하는 필수 전공기초 과목 6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 씨는 필수인 미적분학 두 과목 중 하나를 고등학교 때 들어 다른 기초 과목을 수강했다.

한 학기에 전공과목이 3개뿐이니 여유 있을 것 같았지만 오산이었다. 모든 과목은 교수의 3시간 강의 외에 반드시 조교와의 면담 2시간이 포함돼 있어 시간표가 빡빡했다. 강의는 이론과 공식이 나오게 된 과정을 증명하는 것 위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문제 풀이는 조교와의 면담 시간에 이뤄진다. 질문이 쏟아진다. 과목당 과제는 반드시 일주일에 하나씩 있다. 어떤 문제는 혼자 6시간을 매달려도 안 풀릴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 2학년까지 필수 전공기초와 기초 또는 중급 전공과목을 듣는다.

○ 수준 높은 강의라 많이 듣기 어려워

학업량은 초중고교까지 통틀어 제일 많다. 강 씨는 “미국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 놀고 고교 때 약간 공부하고 대학에서 제일 세게 공부한다”며 “한국에서 고교까지 다니고 MIT로 유학 온 친구에게 ‘한국에서 고생하고 미국에서도 고생이네’라고 농담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3학년 이보원 씨(20)는 1학년 때 필수 전공기초를 12개 이수했다. 1학기 땐 △물리학 △물리학실험 △화학1 △화학실험1 △화학생물공학입문 △고급수학 및 연습1, 2학기엔 △화학2 △화학실험2 △기초화학 △수학 및 연습2 △물리실험 △컴퓨터의 개념 및 실습. 전공과목 수가 MIT의 2배다.

1, 2학년 개설 과목의 절대 다수가 전공기초 과목인 건 미국 MIT와 한국 서울대 포스텍 한양대 화학공학과가 모두 동일했다. MIT는 그 비율이 90%로 서울대와 동일하게 높았다. 포스텍은 76%, 한양대는 71%였다.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과학기술이 쉴 새 없이 개발되는 시대지만, 기초과목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재정 서울대 화공학부장은 “4차 산업혁명이나 AI 시대가 와도 필수 전공기초 과목은 큰 변화가 없다”며 “과학은 기본 뿌리가 튼튼한 상태에서 새로운 열매가 맺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박태현 서울대 화공학부 교수(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대학은 현장의 지엽적인 것보다 기초를 잘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공기초 과목을 가르치는 방식은 MIT와 국내 대학이 분명 다르다. 1학년에 이수한 과목은 이 씨가 6개 많다. 그런데 시간표에 표시된 시간은 이 씨가 1학기와 2학기에 각 17시간, 강 씨는 모두 각 15시간으로 총 4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MIT는 과목당 학업 강도가 센 탓에 여러 개를 들을 수 없는 셈이다.

국내는 교수 강의 시간을 기준으로 대부분 전공과목이 3학점이다. 하지만 MIT는 강의(3시간)와 조교와의 면담 시간(2시간), 개인 학습시간을 더해 9∼15유닛이다. 배리 존스턴 MIT 화공과 교수는 “유닛은 학생이 해당 과목에 대해 일주일 동안 들여야 하는 노력의 시간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전공과목 졸업요건은 MIT가 13과목(147유닛)으로 서울대(34과목·100학점), 한양대(29과목·87학점), 포스텍(28과목·82학점)의 절반 이하다.

본보의 이번 교육과정 분석 비교 자문에 응한 배영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학부총장은 “따로 많은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한국 공대와 기초적인 걸 세게 가르치고 그 이상은 통합해 스스로 깨치게 하는 MIT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 산업체 프로젝트하며 배워

MIT 3, 4학년은 단일 전공이론 위주의 수업을 하지 않는다. 전공이론 과목은 전체의 11%(2개)뿐이다. 89%(17개)는 통합과목이다. 통합과목은 1, 2학년 때 다뤘던 전공기초를 다수 다루면서 공정관리와 제품개발,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배운다. 엔지니어링 윤리, 환경과 안전, 사회 이슈도 배운다. 여러 이론이 다뤄지는 만큼 대개 교수 2명이 함께 수업한다.

통합과목의 70%(12개)는 실험통합과목이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지역 내 산업체가 제시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실험과 자료 분석, 발표 및 리포트 작성 능력, 협동심을 배운다. 교재는 전혀 필요 없다.

강 씨는 “교수가 하고 있는 연구와 관련된 프로젝트나 제약회사 또는 정유업체의 프로젝트를 한다”며 “여러 이론이 망라되는데 교수는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대는 3, 4학년에도 전공과목 비중이 높다. 특히 한양대는 그 비중이 89%로 1, 2학년 때(71%)보다 높다. 그나마 포스텍은 실험과목과 통합과목 비중이 각 29%였다. 통합과목은 한양대가 4%, 서울대는 7%에 불과했다. 배 부총장은 “한국 학생들이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지식을 종합할 줄 모르는 건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따로따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대학의 통합과목은 대부분 졸업을 앞두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듣는 연구과목이다. 전상민 포스텍 화공과 교수는 “논문연구 과목을 통해 관심 있는 분야의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 실험하며 배운다”고 했다. 서울대도 창의연구 과목으로 교수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 있다. 방학 때 SK하이닉스 같은 산업체에 풀타임으로 출근하고 학점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MIT처럼 통합과목에 교수가 여러 명 투입되기는 어렵다. 교수 1명에게 ‘한 학기에 몇 학점 이상’ 강의를 요구하는 학칙 때문이다. 김 화공학부장은 “교수 2명이 팀티칭으로 강의하면 1명은 강의한 걸 인정 못 받는다”며 “그 대신 다음 학기에 그에게 강의 시수를 몰아준다”고 설명했다. 학생의 창의력을 키우려면 교수가 창의적 교육방법을 도입할 수 있게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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