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자연으로 은퇴한 아웃도어 창업주

이유종기자 입력 2017-03-23 09:14수정 2017-03-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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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아웃도어 의류 및 장비 브랜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의 공동 창업주 더글라스 톰킨스가 2015년 12월 8일 별세했다. 향년 72세.

톰킨스는 칠레 남부 파타고니아의 헤네랄카레라호에서 카약(에스키모인의 소형 배)을 타다 강풍을 맞아 배가 뒤집혔고 물에 빠진 뒤 구조됐으나 저체온증으로 끝내 숨졌다.

톰킨스는 첫 번째 아내인 수지와 함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노스페이스와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Esprit)를 세워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여생을 자연보호에 헌신한 자선사업가다. 두 번째 아내 크리스틴 맥디비트 톰킨스(67)는 15일 톰킨스 부부의 소유인 파타고니아 지역 땅(4080㎢, 약 12억3420평)을 칠레 정부에 기증했다. 기증 면적만 서울의 6.7배.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기증 받은 땅에 국립공원 3곳을 신설하고 기존 국립공원 3곳의 면적도 더 늘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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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인 출신 아웃도어 용품 사업가

톰킨스는 1943년 오하이오 주 코니어트에서 골동품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스키, 등산을 즐겼다. 청소년기에 와이오밍, 콜로라도 등의 등산을 즐겼고 17세 무렵에는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 스키를 타겠다며 돈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 학업에는 별 뜻이 없었다. 학칙 위반으로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결국 고교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다. 이후 남미 안데스산맥 등을 등반했고 돈이 떨어지자 1962년 캘리포니아 주 타호호(湖) 인근 스키 산장에 머물렀다.

그는 1963년 산악서비스 회사인 캘리포니아등산서비스를 세우며 산악 관련 일을 시작했다. 같은 해 여름 히치하이킹을 하다 첫 아내인 수지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수지는 아웃도어 의류 및 장비 관련 사업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톰킨스 부부는 1964년 은행에서 5000달러를 빌려 샌프란시스코 인근 노스비치에 우편으로 주문을 받고 스키, 등산 장비 등을 판매하는 ‘노스페이스’라는 가게를 열었다. 노스페이스는 당시 시장에는 별로 없었던 좋은 품질의 침낭, 등산가방, 텐트를 내놓았다.

노스페이스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다. 톰킨스는 기존 텐트의 단점을 모두 상쇄하는 새로운 형태의 텐트를 고안했다. 당시 제작된 텐트 중앙에는 막대가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공간 활용이 별로 좋지 않았다. 톰킨스는 휘는 막대를 활용해 중앙에 따로 막대를 설치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돔과 비슷한 반구형의 텐트를 만들어 바람이 쉽게 비껴 갈 수 있도록 했다. 텐트는 악조건의 기상상황에서도 튼튼히 버틸 수 있었다. 노스페이스의 텐트는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경쟁기업들이 짝퉁을 제작할 정도였다.

노스페이스는 1966년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며 성장을 이어갔지만 톰킨스는 1968년 지분 대부분을 5만 달러에 케네스 합 클롭에게 넘기고 회사 경영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대신 같은 해 아내 수지가 친구와 시작한 여성 의류사업(에스프리)에 뛰어들었다. 에스프리는 1971년 법인을 만들었고 1978년 매출액 1억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톰킨스는 자신이 창업주인 노스페이스, 에스프리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말까지 막대한 재산을 손에 쥐었다.

● 서울의 13배 면적을 매입해 생태지역 조성



1980년대 말 톰킨스는 가정, 사업 모두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1989년 아내 수지와 이혼하고 남은 노스페이스, 에스프리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대신 20대 시절에 찾았던 남미 파타고니아의 원시림에 주목했다. 파타고니아는 남위 38도 이남 지역으로 안데스산지, 파타고니아고원 등을 포괄하는 칠레, 아르헨티나에 걸친 방대한 지역이다. 인구는 희박하나 빙하 지형이 많아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관광객이 몰린다. 톰킨스는 여생을 파타고니아의 자연보존에 모두 걸기로 했다.

그는 1993년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크리스틴 맥디비트와 재혼하면서 생활 거점을 미국에서 칠레,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톰킨스와 크리스틴은 생태계 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톰킨스는 생물다양성 보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 발디비아 일대를 여러 차례에 걸쳐 71만5000에이커(약 2893㎢)를 매입하고 푸말린공원(Pumalin Park)을 세웠다. 이후 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환경보전기금 중 하나인 ‘컨저베이션 랜드 트러스트(Conservation Land Trust)’를 출범시키며 미국의 자선가 피터 버클리와 함께 푸말린 남부 원시림 20만8000에이커(약 841㎢)를 추가로 매입했다. 이후 칠레 정부의 도움 등으로 칠레에서 여섯 번째로 큰 자연공원인 면적 72만6000에이커(약 2938㎢)의 코르코바도국립공원을 출범시켰다.

톰킨스가 사들인 지역은 빽빽한 숲과 풍부한 수자원, 비옥한 토질 때문에 목재기업, 전력회사, 농업인이 탐내는 곳이다. 그는 ‘투자 가치가 높은 땅’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만들고 싶어했다. 사람들이 원시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으나 경작, 개발은 단호하게 불허했다.

2000년 아내 크리스틴이 만든 ‘파타고니아보호재단(Conservacion Patagonica)’은 아르헨티나 남부 이베라 습지의 16만5000에이커(약 667㎢)를 매입해 아르헨티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기증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지역을 ‘몽 레옹 국립공원(Monte Leon National Park)’으로 출범시켰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인근 지역을 더해 173만에이커(eir 7000㎢)에 이르는 거대한 국립공원(그레이트이베라공원)을 추진 중이다. 이와 별도로 파타고니아보호재단은 칠레 아이센 지역의 차카부코계곡 일대 17만4500에이커(약 706㎢)를 매입해 65만에이커(약 2630㎢) 규모의 파타고니아국립공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쉽지 않았던 오해 극복



톰킨스 부부는 현재까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산림 약 200만 에이커(약 8093㎢)를 매입했다. 서울면적의 13배가 족히 넘는 규모다. 그리고 대부분을 해당 국가에 기증했다. 활동 초창기 칠레,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톰킨스 부부를 환영하지 않았다. 미국인 갑부의 자연보호 활동에 어떤 꼼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톰킨스가 원시림의 보존가치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보존만을 조건으로 해당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톰킨스는 생전에 “우리는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지는 않다”며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 싶었다면 자연보호사업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톰킨스의 거대한 유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유무형 자산은 더 커지고 있다.


이유종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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