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개의 눈에 비친 인간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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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시모나 물라차니 그림·엄지영 옮김/112쪽·1만800원·열린책들

첫 장(章)을 넘기면서 어렸을 때 거듭 읽은 ‘시이튼 동물기’와 ‘정글북’이 생각났다. 이 짤막한 동화는 ‘아프마우’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일인칭 서술로 전개된다. 개의 이름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인 마푸체족의 말로 ‘충직함’을 뜻한다.

충직함은 인간의 시각에서 개를 바라보고 판단한 특성을 대표하는 단어다. 시이튼 동물기와 정글북이 나이 들수록 불편하게 여겨진 건 그 이야기들 속 동물들의 속내와 성미를 가늠하고 규정할 자격이 인간에게 과연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부터였다.

아프마우는 마푸체족 사람들이 살던 터전을 앗아간 외지인의 손에 붙들려 지내다 옛 주인인 청년 아우카만의 뒤를 쫓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작가는 중반부까지 개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어린 시절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아우카만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을지, 가혹한 매질과 투견 놀음에 시달린 나머지 난폭한 사냥개로 변했는지 알 수 없다. 그 긴장감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재촉한다.

아무래도 동화인 까닭인지 절정부와 결말 흐름에는 기시감이 강하다. 개의 일인칭 시점으로 문장을 엮었지만 끝내 인간 시점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보인다. 하지만 드문드문 인간 사회에 대한 ‘개의 비판’이 섞여 있어 실망감을 가라앉힌다.

“두려움은 언제나 똑같은 냄새를 풍긴다. 그중에서도 사람에게서 나는 두려움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 저들은 도망간 인디오를, 우거진 수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두려워한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루이스 세풀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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