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시작 21분만에 “파면”… 숨죽이던 법정에 나직한 탄성

배석준기자 , 신규진기자 입력 2017-03-11 03:00수정 2017-03-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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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국민 시선 쏠렸던 헌재 대심판정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아….”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탄핵 심판의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을 읽자 대심판정 방청석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환호나 고성은 없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판가름 나는 역사적 현장. 이날 오전 11시 정각 이 권한대행이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자 대심판정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듯했다. 이 권한대행이 선고 이유에 해당하는 결정문을 읽어 내려가는 21분 동안 심판정은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소리는 이 권한대행의 음성밖에 없었고, 움직이는 것은 생중계 TV 카메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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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석에는 내외신 기자 150여 명이 자리했다. 인터넷 추첨에서 선정된 일반인 24명도 자리했다. 796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잔뜩 상기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앞서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오전 10시 40분부터 차례로 심판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오전 11시 이 권한대행과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 등 8명의 재판관이 차례로 입정했다. 모든 방청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권한대행은 결정문을 읽기에 앞서 심판 진행 경과와 헌재의 입장을 밝혔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한다.”

11시 3분.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다.” 이 권한대행의 결정문 낭독이 시작됐고, 대심판정의 모든 사람이 그의 입에 귀를 맞췄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국회 탄핵 소추 의결 과정의 하자 부분을 주장한 것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서기석 재판관이 고개를 돌려 이 권한대행을 잠시 쳐다봤다. 동시에 대리인단의 손범규 변호사도 이 권한대행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반면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황정근 변호사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11시 8분 탄핵 소추 사유의 판단 결과가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 자유 침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자 탄핵소추위원단 측 참석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추위원장인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은 재판부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국정 농단 공모가 언급되면서부터다. 11시 12분 이 권한대행은 청와대 문건이 수시로 최 씨에게 전달된 문제를 지적했다. 순간 조용호 재판관과 바로 옆 강일원 재판관이 서로를 응시했다. 박 대통령 파면 결정을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어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박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한 내용이 설명됐다. 이 권한대행이 “최 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헌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배했고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규정짓자 권 의원은 미소를 지었다. 반면 박 대통령 측 이동흡 변호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점점 단호해졌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박 대통령을 꾸짖는 듯한 어조였다.

이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파면을 선언한 뒤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 의견을 밝혔다. “탄핵 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권한대행과 재판관 7명이 퇴정하자 탄핵소추위원단 변호사들은 악수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권 의원은 박 대통령 대리인단 쪽으로 걸어가 이동흡, 이중환 변호사에게 악수를 청했다. 박 대통령 측 변호사들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아무 말 없이 대심판정을 빠져나갔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규진 기자
#헌재#탄핵심판#박대통령#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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