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WBC서 한계 직면한 1982년 세대의 영광

김영준 기자 입력 2017-03-09 05:30수정 2017-03-0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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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대표팀 이대호-김태균-오승환(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일본의 스포츠전문잡지 ‘넘버(Number)’는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끝난 시점에 특집기사를 실었다. ‘일한(日韓) 1982년 세대의 시대’라는 제목이었다. 당시 WBC 우승과 준우승을 해냈던 일본(6명)과 한국대표팀(5명)에 1982년생은 총 11명이었다.

특히 한국대표팀의 1982년생 면면을 살펴보면, 이대호(롯데), 김태균, 정근우(한화), 추신수(텍사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있었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 WBC 대회도 어느덧 4회째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대표팀에서 1982년생은 여전히 전력의 중추였다. 김태균이 3번타자, 이대호가 4번타자로 중심타선을 맡았고, 오승환은 부동의 마무리였다. 만약 부상이 없었고, 대표팀이 제약 없이 선수를 뽑을 수 있었다면 정근우와 추신수 역시 뛰었을 것이다.

이들 1982년 세대는 한국야구 르네상스를 이끈 빛이었다. 이들이 류현진(LA 다저스), 김현수(볼티모어), 김광현(SK), 양현종(KIA) 등 1988년 서울올림픽 세대와 맞물리며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는 빅뱅을 일으켰다. 결정적 순간에는 이승엽(삼성), 박찬호(은퇴) 등 해외파들이 해줬다.

그러나 한국야구의 세대교체가 더디게 돌아가며 1982년 세대에도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자기관리로 1982년 세대의 주축들은 여전히 건재하나 역설적으로 그만큼 순환이 안 되는 현실도 반영한다. 2017년 WBC는 해외파 레전드, 서울올림픽 세대의 조력 없이 1982년 세대가 홀로 떠받치려다 한계에 직면한 대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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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09년 6명에 달했던 일본대표팀의 1982년 세대 중 2017 WBC에서도 엔트리에 남아 있는 선수는 아오키 노리치카(휴스턴)와 우치카와 세이치(소프트뱅크)가 유이하다. 야수진은 3명만 빼면 모두 1987년 이후 출생이다. 1982년 세대의 책임론을 묻기에 앞서 이들에게 너무 오래 무거운 짐을 지게 했던 현실이야말로 환부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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