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교수 “헛도는 90개 저출산정책 대수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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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위 민간위원 대표 이봉주 교수
부처마다 우후죽순격 대책 내놔… 10년간 80조 투입에도 효과 없어
출산율보다 육아환경 개선에 초점, 저출산정책 패러다임 바뀌어야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위원 대표를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 저출산 정책도 아이를 키우기 수월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위원 대표를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 저출산 정책도 아이를 키우기 수월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저출산 관련 정책만 90개가 넘더군요. 과감히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봅니다.”

6일 출범한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위원 대표(간사위원)를 맡은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6·사진)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국내 저출산 정책 평가다.

정부는 이날 이 교수를 비롯해 우남희 육아정책연구소장 등 9명을 민간위원으로 하는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이 위원회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비롯해 중장기 인구 구조 분석, 사회경제적 변화 등을 심의하는 인구 위기 극복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구조조정’이란 과격한 단어부터 꺼낸 이유에 대해 “저출산 정책과 그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 간에 상관관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무상보육이 늘어났지만 전업주부와 직장 여성 간 형평성 논란만 커졌을 뿐 출산을 늘리는 데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1, 2차 저출산 대책에 투입된 재원의 75%가 보육 지원에 들어갔어요. 부처들도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우후죽순 격으로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죠. 저출산 정책을 정밀히 평가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확대하고, 효과가 없는 정책은 과감히 줄일 계획이에요.”

실제 정부는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80조 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출생아 수는 40만6300명으로 1년 전(43만8400명)보다 3만2100명(7.3%) 줄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5기 위원회 산하에 보건복지부 장관과 간사위원, 각계 전문가와 각 부처 차관급이 참여하는 ‘인구정책개선기획단’까지 이달 중 설치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작정 출산을 장려한다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일자리, 주거, 교육 같은 사회 전반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거예요.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고 작은 집이라도 구해 결혼할 수 있어야 하죠. 사교육비 등 양육 부담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합니다. 당장의 출산율 증가를 위한 정책보다는 ‘태어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정책적 보완에 집중해야 합니다.”

서울대, 미국 시카고대(박사)를 거치며 주로 사회복지를 연구해온 그가 저출산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 한 외국인 학자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스웨덴의 한 복지학자가 저희 학교를 방문했어요. 한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길에 아이들이 안 보여 깜짝 놀랐다’고 심각하게 말했어요. 복지국가를 논하기 전에 아이들이 잘 클 수 있는 사회가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죠.”

이 교수는 “대학을 졸업한 딸과 고3 딸을 둔 학부모 처지에서도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을 꼭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양육 부담이 과도하게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어요. 잦은 야근 등 여성을 힘들게 하는 노동시장도 바뀌지 않고 있죠. 저출산은 단순히 아이를 덜 낳고 더 낳고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미래세대를 어떻게 길러내고, 미래세대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는 5기 위원회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 등도 검토할 예정이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노인 부양 부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줄이느냐가 중요해질 겁니다. 노인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활동 연령 등을 재정의하는 중장기 대책이 필요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저출산 정책#육아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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