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북한에는 여자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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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여인들이 수레 타고 바깥 외출을 하거나 남성들과 함께 춤추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도 고구려 여인들은 결혼과 재산 상속은 물론이고 공적 생활에서도 별다른 억압과 차별 없이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 땅의 후손들은 그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2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상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여성경제활동지수는 33개국 중 32위,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6%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갈 길은 멀어도, 어쨌거나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고 사회 곳곳에서 유리 천장 깨지는 소리들도 요란하다. 문제는 일찍부터 여성 해방을 떠벌렸던 북한이다.

▷북 정권의 인권유린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특히 여성에게는 모질고 독하다. 얼마 전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그 절절한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눈물바다가 됐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한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 살았던 박금옥 씨는 탄광서 일하다 실수했다는 이유로 톱 망치 도끼 등으로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탈출에 실패했을 때는 남자들이 야구방망이로 마구 때렸다. 굶주림에 못 이겨 독버섯을 먹는 바람에 젖먹이와 함께 목숨을 잃은 젊은 엄마의 사례도 있었다. 북한군의 약 30%를 차지하는 여군들은 상급자의 성추행 성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임신이 적발될 경우 죄 없는 여성 병사만 강제 낙태와 불명예제대 등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에는 여자가 없다.’ 인권단체인 휴먼아시아와 탈북여성단체가 8일 세계 여성의 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여는 토크콘서트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1946년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제정했다. 그 결과는 남녀를 노동력 착취의 수단으로 ‘공평하게’ 대우한 것과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전락시킨 것이다. 우리 사회도 무심했다. 북한인권법은 9월부터 시행됐지만 북한인권재단은 아직 출범하지 못했다. ‘여성 혐오’에 민감한 여성단체들도 북녘 여성들의 비극에는 조용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눈물은 언제쯤 마를 것인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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