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동상 녹슬고 거미줄… 이봉창 의사님 죄송합니다

정승호 기자 , 이인모 기자 , 손효주 기자 입력 2017-03-04 03:00수정 2017-03-04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국 3·1운동 기념비-항일의병탑 둘러보니 98년째를 맞은 3·1절 오후 한나절 서울 광화문 앞에서부터 숭례문 앞까지 10차로는 갈라진 민심의 바다였다. 독립을 위해 비폭력 정신으로 만세를 외쳤던 이들의 후손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나라를 위한 한마음이 퇴색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찾고 싶었다. 동아일보가 1971년부터 전국 15곳에 뜻이 통한 여러분과 함께 세웠던 3·1운동 기념비와 항일의병탑을 2일 다시 돌아봤다. 짧게는 22년 전부터 멀게는 46년 전, 3·1정신이 깃든 장소에 세운 기념비들은 대부분 굳건히 서 있었다. 한때 잡초 무성하고 쓰레기 날리던 공간은 민(民)과 관(官)의 한뜻으로 산뜻하고 엄숙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호남 항일 의식의 산물

2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성리 3·1운동 기념비 앞 화단에서 아낙들이 잔디를 손질하고 있다. 강진군은 1976년 기념비가 건립된 이래 매년 이곳에서 3·1절 기념비 참배 행사를 열고 있다. 강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일 오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성리 3·1운동 기념비 앞 화단에는 봄소식을 전하는 노란 팬지꽃이 활짝 피었다. 이곳의 8m 높이 기념비는 1976년 5월 9일 건립했다. 41년 세월의 더께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건립 취지문은 당시 강진 군민의 항일 의식을 보여 준다. 뒷면에는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의사(義士) 2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은 사흘 뒤 기미독립선언문을 구두창에 숨겨 와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려 했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됐다. 한 달 뒤인 4월 4일 강진 장날을 맞아 의사 24명과 주민 4000여 명이 전남 지역 최초, 최대 규모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강진군은 1977년부터 이곳에서 3·1절 기념비 참배 행사를 열고 있다.

관련기사
영암군 군청 뒤편 영암공원에도 1984년 건립된 3·1운동 기념비가 있다. 높이 4.8m의 기념비는 위 폭이 좁아지는 일자형 수직 형태로 조형미가 돋보였다. 위쪽 좌우로 용 문양이 조각돼 있고 정면에 ‘만세(萬歲)’, 하단에는 ‘영암 삼일운동기념탑(靈巖三一運動紀念塔)’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졌다. 1984년 건립 당시 영암군 출신 재미교포 민승연 씨가 100달러를 본보에 기탁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전북 익산시 창인동 익산역 광장 한편에 서 있는 기념비는 1971년 8월 15일 동아일보사가 익산 지역 유지들로 구성된 건립협찬회와 함께 세운 전국 1호 기념비다. 주위는 키 작은 회양목과 철쭉 등으로 단장돼 있다. 다만 3·1운동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45년 보존 한길 횡성군

강원 횡성군 횡성읍 횡성군청 뒤편의 3·1공원에 1972년 8월 15일 건립된 ‘횡성 3·1운동 기념비’와 그 옆의 일제에 항거하는 조형물이 깨끗하게 보존돼 있다. 44년이 넘게 흘렀지만 비문의 글씨는 아직도 선명하다. 횡성=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강원 횡성군 횡성읍 횡성군청 뒤편 3·1공원에 45년 전 세운 ‘횡성 3·1운동 기념비’ 주위는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1972년 당시 횡성 협찬회와 동아일보가 건립 비용 250만 원을 절반씩 부담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세웠다. ‘一九一九년의 三·一만세는 한일합방에 항거하는 통분한 함성이요, 자유와 국가를 되찾으려는 비상한 절규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비문은 아직도 선명했다.

기념비가 잘 보존된 것은 횡성군과 직원들의 남다른 관심 덕분이다. 공원관리사무소가 주변을 매일 청소하고 수시로 기념비를 세척한다. 기단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해 주변의 차량 통행을 자제시킬 만큼 세심하게 관리했다. 한성현 횡성군 문화예술담당은 “색이 다소 변하기는 했지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즉시 보수하고 있다”며 “다만 풍화작용 탓에 비문의 글씨가 선명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달리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내에는 횡성을 비롯해 양양, 홍천에 기념비가 있다. 1979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 무궁화공원에 세워진 홍천 기념비는 지난해 전면 보수를 해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기념비와 달리 벽돌을 쌓아 올린 형태다. 원형을 살리는 데 신경을 썼고 기둥과 비문은 그대로 보존했다. 홍천군은 매년 이곳에서 3·1절 기념행사를 연다.

탈바꿈한 영동군 기념비

충북 영동군 영동읍 중심가에 위치한 ‘영동 3·1운동 기념비’와 그 주변은 시가지와 자연이 어우러진 소(小)공원으로 탈바꿈했다. 2002년 7월 말 동아일보 기자가 찾았을 때만 해도 비문은 얼룩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고 주변엔 쓰레기가 널렸었다.

그러나 15년 전 모습은 이제 찾기 어렵다. 2011년 정구복 군수 재임 시절 군(郡)이 국비 5억2500만 원을 확보해 정비한 것이다. 정 전 군수는 2일 “기념비가 잊혀져 간다는 말을 듣고 누구나 찾고 기억할 수 있는 곳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1972년 3월 4일 세워진 기념비 앞면의 건립 취지문은 1919년 3월 4일 군민 수만 명이 영동 아랫장터를 비롯해 곳곳에서 벌인 만세운동을 알려준다. 영동군은 ‘국악의 고장’답게 기념비 주변에 국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을 세웠다. 비석 주변은 대리석으로 둘러싸 누구나 앉을 수 있도록 했고 잔디를 촘촘히 심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오포대(午砲臺)도 재정비해 주민 휴식 공간으로 바꿨다.

충남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마산초등학교 옆의 ‘3·1운동 기념비’는 1919년 3월 29일 마산 새장터 장날 2000명이 참가한 서천 지역 최대 규모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1987년 조성했다. 서천군은 기념비 주변에 무궁화를 심고 누각을 지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2008년부터 매년 3월 28일 만세운동 재연 행사를 연다.

관리 떠넘기는 서울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이봉창 의사 동상 앞. 홍성희 씨(84)는 동상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1932년 일왕 히로히토(裕仁)를 향해 폭탄을 던지려 팔을 힘껏 뒤로 젖힌 모습을 재현한 동상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3.5m 높이의 동상은 얼굴과 몸통 부분이 심하게 녹슬어 얼룩덜룩했다. 녹슨 코트 자락 안으로는 거미줄이 보였다. 1995년 세운 이 의사 동상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곳은 없다. 관리 주체인 용산구청 관계자는 “동상 자체 문제는 기념사업회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3년 전 보수 작업을 한 게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서울 중랑구 망우리공원 인근 ‘항일 의병 13도 창의군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907년 전국 13도 의병들이 이 일대에서 서울로 진격하려던 것을 기리며 1991년 건립했다. 2일 찾아 보니 비석에는 얼룩과 흠집이 가득했고 의병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곳곳에 이끼가 끼었다. 관리 주체인 중랑구청 측은 “망우리공원을 관리하는 서울시립승화원이 수탁 관리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승화원 측은 “탑은 공원 바깥쪽에 있으니 구청이 관리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충시설의 지정·관리 및 건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지정된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비석·탑·동상 등)은 전국 889개다. 관리자별로 구분하면 국가가 3개, 지방자치단체가 408개, 대학 등 각급 학교가 62개, 민간이 416개다. 2005년부터 관리자가 지자체인 현충시설은 지자체 예산으로 유지 및 보수를 하게 됐다. 이후 현충시설에 대한 관리 부실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2005∼2014년 한시적으로 사실상 편법인 분권교부세를 도입해 지자체를 지원했지만 현재는 폐지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보훈처는 관리자가 지자체인 현충시설까지 모두 국고를 지원해 유지 및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충시설 관련 법령’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진·영암=정승호 shjung@donga.com / 홍천·횡성=이인모 / 손효주 기자
#3·1운동 기념비#항일의병탑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