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선 “탄핵기각땐 불복” “빨갱이 척결”… 시민들은 차분했다

정지영기자 , 조윤경기자 , 백승우기자, 정동연기자 , 신규진기자 , 성혜란기자 입력 2017-03-02 03:00수정 2017-03-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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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찬성-반대 광화문 집회… 과격 선동에 거리 둔 시민들 《 98년 전(1919년) 3월 1일 서울 도심의 군중은 하나였다. 광화문 앞에서 한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2017년 3월 1일 광화문은 경찰의 차벽(車壁)으로 둘러싸였다.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날을 ‘총결집의 날’로 정해 태극기를 들고 세종대로에 모였다.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자리 잡았다. 양측의 경계는 세종대로 사거리에 세워진 경찰 차벽뿐. 단상 위에선 상대를 향해 “빨갱이 척결” “부패한 권력의 방패”를 외쳤다. 하지만 단상 아래 대다수 시민은 차분했다.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치고 쓰레기를 치운 뒤 질서를 지키며 귀가했다. 양측은 각각 500만 명과 30만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

● ‘탄핵인용 만세’ 소리친 촛불집회

“탄핵 촉구”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 18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되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강력한 규탄행위를 해야 합니다.”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서는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선고에 대한 ‘불복 발언’이 이어졌다.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제시한 집회 명칭은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 인용 만세! 황교안 퇴진! 3·1절맞이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이었다. 촛불집회는 태극기집회보다 3시간가량 늦은 오후 5시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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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손에는 촛불과 작은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태극기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단상에 오른 최영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으로 시작한 박 정권은 출발부터 잘못됐다”며 “이것만으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탄핵되면 1차 승리를 자축하며 결의하겠다. 하지만 만에 하나 기각되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강력한 규탄행위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검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헌재 결정에 승복 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욕설을 하는 집회 참가자도 일부 있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탄핵 반대 단체에 대해 “숭고한 태극기를 부패한 권력자의 방패로 쓰는 것은 애국선열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 박 대통령 대리인단을 향해서는 “정의감과 민족정신 애국심도 없이 부패한 대통령 옹호하며 억지 쓰는 건 국민과 역사 앞에 죄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한 뒤 촛불집회로 자리를 옮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89)도 단상에 올랐다. 그는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튼튼한 대한민국을 지키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넘겨줘야 한다”고 했다. 집회 주최 측은 “탄핵안이 인용돼 박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으로 엄정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아프리카 악기인 부부젤라를 불거나 야유를 보내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행사는 대체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특히 단상 아래 대부분의 시민은 단상 위 과격한 선동 발언에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3세 아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유모 씨(35·여)는 “우리 가족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위해 이 자리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반드시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유 씨는 유모차를 밀면서 틈틈이 집회 현장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웠다. 강영윤 씨(22·여)는 “평소 가족들끼리 정치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며 “오늘도 엄마는 태극기집회에 갔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이성훈 씨(33)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이 오늘 벌어진 두 집회 광경을 본다면 너무 슬퍼할 것 같다”며 “이번 위기가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줄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황교안이 박근혜다. 둘 다 꺼져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지점까지 행진했다. 집회 주최 측은 “촛불이 민심이다” “촛불이 승리한다”를 외치며 오후 7시 50분경 집회 종료를 선언했다.

● ‘대한민국 만세’ 외친 태극기집회

“탄핵 무효”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좀비들아 태극기 말 좀 들어라. 좀비들아 어른들 말 좀 들어라!”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서는 이처럼 원색적인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 발언은 단상에 오른 집회 사회자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측을 겨냥한 것이었다. 사회자는 참석 인사 발언 중간 중간 ‘촛불집회’가 열린 북쪽 광화문광장을 향해 “꺼져버려”를 외쳤다. 그때마다 집회 참가자들은 ‘5초간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날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열린 집회 단상에 오른 인사들은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는 “촛불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며 저주에 가까운 표현을 꺼냈다. 김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법정에 나가 ‘박 대통령님은 무죄이므로 억울한 유폐 생활에서 즉시 풀려나야 한다’고 역설했다”며 “국회의 탄핵소추가 그 목적과 절차 방법에 있어 동서고금의 유례가 없는 사기 거짓 졸속의 탄핵소추였음을 깨끗이 증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구호로 참가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빨갱이들 잡아라” “김진태 차기 대통령 해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또 같은 당 소속 윤상현 의원은 “특검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무소불위 권력이 되어버렸다”며 “입만 열면 탄핵 탄핵 하는 사람들이 왜 북핵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하느냐”고 외쳤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집에서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나왔다는 이모 씨(51)가 참가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오전 11시경 서울 금천구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손가락을 절단한 뒤 혈서를 작성해 집회에 참석했다. 이 씨는 혈서에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나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적었다. 그는 경찰에서 “안중근 의사처럼 해보고 싶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속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그랬다”고 주장했다.

태극기집회 단상 위 분위기는 섬뜩했지만 단상 아래서 차분하게 행동하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태극기를 들고 나란히 집회에 참석한 김성찬 씨(55) 부부는 “태극기집회 참가자가 촛불집회보다 많다. 이제 진실이 눈을 뜬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원룡 씨(57)는 테니스 동호회원 4명과 함께 참가했다. 이 씨의 가방에는 ‘하나 되자♡대한민국’ ‘사랑해요♡대한민국’이라는 문구와 태극기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씨는 “특별히 정치적 견해는 없다. 다만 그동안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컸다”며 “태극기집회 쪽 참가 인원들이 대부분 또래여서 직접 와봤다”고 말했다.

휴일을 맞아 두 딸과 함께 나들이를 가려다 집회에 참석했다는 조원희 씨(44) 부부는 “아이들이 어리긴 하지만 워낙 국가적인 사안인 만큼 아이들에게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씨는 “태극기를 아이들에게 쥐여주고 애국가를 부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오후 7시경 집회가 끝난 뒤 세종대로와 인근 청계광장에서는 일부 참가자가 쓰레기를 치우고 귀가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집회 참석을 위해 혼자 서울에 왔다는 이석환 씨(31)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춥고 비도 오는데 나와서 나라 걱정한다고 집회하시는 거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정지영 jjy2011@donga.com·조윤경·백승우 기자·정동연 call@donga.com·신규진·성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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