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35년만의 美공장 뒤엔… 고임금 부담 덜 ‘당근’ 있네

신동진기자 입력 2017-03-02 03:00수정 2017-03-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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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세탁기공장 ‘숨은 이유’는

#1982년


금성사(현 LG전자)는 미국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세웠다.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공장이었다. 이 공장은 10년 만인 1992년 가동을 멈췄다. 높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했고 미국 정부가 부품 현지조달 비율을 높이라고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의 주청사에서 빌 해슬램 주지사와 공장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향후 2년간 2억5000만 달러(약 2825억 원)를 들여 연간생산 100만 대 규모의 세탁기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미국에 첫 공장을 지은 지 35년, 그 공장을 철수한 지 25년 만에 두 번째 공장 건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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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인건비가 비싼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배경은 뭘까.

첫째 원인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정확히는 ‘트럼프의 채찍’이다. 트럼프는 미국 현지 기업은 물론이고 해외 기업에도 전방위적으로 미국 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고 있다. 멕시코산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세계 각국과의 무역협정도 재검토할 태세다.

미국 대표기업인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을 돕기 위해 더 많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생산과 부품 조달 확대를 우회적으로 시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도요타 등 해외 기업들도 트럼프 입맛에 맞는 투자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5년간 31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LG전자의 세탁기 공장 설립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기업들의 미국 투자 러시를 트럼프 압박으로만 해석해서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를 결정할 때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지 않는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 부담은 35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LG는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대거 옮겨갈 예정이다. 미국 내 인건비는 동남아의 3배가 넘는다. 결국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당근’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LG전자와 테네시 주가 MOU를 맺던 날 국회 연설에서 “기업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인하 등 세제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LG전자 공장을 유치한 테네시 주정부도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내세웠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세금 감면이나 공장 건설비용 지원, 인프라 개선 등 상당한 혜택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미국의 4개 주를 공장 후보지로 정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테네시 주를 낙점했다.

미국 북부 지역에 비해 친(親)기업 정서가 강한 것도 공장 용지 선정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조성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오랜 기간 검토해 온 미국 내 생산기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테네시 주에서 찾았다”고 했다. 공장자동화로 생산성이 좋아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도 선택의 한 요인이었다. LG전자가 운영 중인 미국 시카고 연구개발(R&D)센터와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LG전자는 미국 공장 설립이 중국 가전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가장 큰 장점인 ‘낮은 원가’를 포기하면서 미국에 공장을 지을 이유와 여력이 적기 때문이다.

LG전자의 미국 공장 투자 결정은 한국 경제 전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정부가 채찍과 동시에 제시한 강력한 기업유인 정책은 투자 기업과의 ‘윈윈’을 통해 미국 내 일자리를 확실히 창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반기업 정서 확산과 대기업 규제 움직임, 해외 투자 유인책 부족 등이 겹치면서 투자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분위기면 국내외 기업 사이에 생산기지로서의 한국 기피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이 매력적인 입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그런 노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lg전자#테네시#세탁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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