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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인맥-팀워크 무기로… 골드만 사단, 트럼프노믹스 좌우

입력 2017-02-11 03:00업데이트 2017-0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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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획]트럼프 정부 요직 장악한 ‘금융 공룡’ 골드만삭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직에 대거 진출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와 ‘골드만삭스’를 합성한 ‘거번먼트 삭스’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길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거번먼트삭스 트위터
“골드만삭스가 워싱턴을 접수했다.”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회사 골드만삭스 본사 앞. 시민 수천 명이 이같이 외치며 늦은 밤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 시위대는 ‘골드만삭스 정부(Government Sachs)’라고 적힌 피켓을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골드만삭스 관련 인사를 6명이나 중용하자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골드만삭스 사람들을 어떻게 정부 요직에 앉힐 수 있느냐”며 항의 시위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의 오른팔로 통하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비롯해 트럼프가 지명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대외연락담당, 제이 클레이턴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디나 파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등이 트럼프 행정부의 골드만삭스 인맥으로 분류된다. 클레이턴 위원장은 골드만삭스를 대리한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쏟아지는 비난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월가를 개혁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뒤집고 골드만삭스와 손을 잡은 트럼프 대통령은 3일 금융회사 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을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민주당 등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향후 수혜가 예상되는 골드만삭스 주가는 4% 넘게 뛰었다. 금융규제 완화 행정명령을 이끌어낸 주역이 골드만삭스 출신인 콘 NEC 위원장이라는 보도(파이낸셜타임스)도 나왔다.

월가 금융회사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가 워싱턴을 향한 등용문이 된 것은 워싱턴 정계 생리를 닮은 특유의 기업 문화가 그 비결이라고 조직을 안팎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말한다.

골드만삭스 인재와 보고서가 워싱턴 점령

1869년 미국에 이민 온 유대계 독일 가문이 채권 중개회사로 뉴욕 맨해튼에서 문을 연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자산 8800억 달러(약 1012조 원)의 세계 1위 투자은행으로 성장했다. 본사가 있는 뉴욕은 물론 런던, 파리, 아시아의 베이징, 도쿄, 한국 등 세계 곳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사업 분야는 투자은행업, 증권업, 컨설팅 등으로 얼핏 보기엔 정치권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와 정치권의 공생 관계는 뿌리가 깊다.

월가의 대표주자 골드만삭스는 미국 대선 때마다 대선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쾌척하며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골드만삭스에 모여 있는 뛰어난 경제 엘리트들은 경제 관료나 자문역으로 발탁되기가 쉬웠다. 골드만삭스 창립 가문인 골드만 가문의 헨리 골드만은 1913년 연방준비제도 설립을 도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시드니 웨인버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를 전쟁물자생산위원회 담당 차관에 임명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행크 폴슨 재무장관도 모두 골드만삭스가 배출한 인재이다.

트럼프 시대 골드만삭스는 여느 때보다 막강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핵심 요직에 6명이 포진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빗대 최근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싱크탱크는 골드만삭스’라는 말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예측하려면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같은 뉴욕의 사업가들은 보수 성향의 정통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기업연구소(AEI)보다 골드만삭스의 리포트에 친숙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두루 만난 조현동 외교부 공공외교대사는 “골드만삭스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숫자로 명확히 제시해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린 ‘나’라는 말 안 쓴다”

골드만삭스에는 스타 뱅커가 넘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회사 외환담당 부사장으로 근무한 리사 엔들리치는 저서 ‘골드만삭스’에서 1977년 신입 여직원이던 재닛 티부 핸슨의 일화를 통해 독특한 조직 문화를 소개했다. 핸슨이 만기 3개월짜리 국채 2만 달러(약 2300만 원)어치를 판매한 뒤 들뜬 마음으로 상사에게 “제가 이 거래를 해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상사는 “골드만삭스에선 ‘우리(We)’라고 하지 ‘나(I)’란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고 차갑게 답했다. 엔들리치는 “골드만삭스는 개인적 영광을 찾는 사람에겐 ‘번지수가 틀렸으니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권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에선 월가의 엘리트이면서 팀워크가 뛰어난 골드만삭스 리더를 호시탐탐 노렸을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자신의 임직원들을 공공 분야에 적극 소개하는 전통도 행정부 진출의 연결 고리가 됐다. 폴리티코는 “골드만삭스는 148년 역사 내내 직원들에게 은퇴 후 꼭 공익에 기여하는 활동을 할 것을 독려한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유독 골드만삭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엘리트 집단’이란 상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 ‘미국금융개혁’의 알렉시스 골드스타인 수석연구원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내가 최강이고 최고’란 이미지를 강조한다. 골드만삭스가 다른 대형 금융사를 능가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평판이 트럼프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곳곳에 뻗쳐 있는 골드만삭스 인맥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 영국 중앙은행(BOE) 마크 카니 총재도 모두 골드만삭스가 배출한 인물이다. 골드만삭스의 전직 디렉터이자 ‘대통령의 모든 뱅커들’의 저자인 노미 프린스는 가디언에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음 세대 인사들과도 인맥을 맺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월가의 ‘파쇼’, 변신에 성공할까

트럼프 행정부의 골드만삭스 인맥
하지만 최근 골드만삭스만의 문화가 퇴색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속력이 강한 골드만삭스 내부에서 잡음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고객을 중시하는 가치가 깨지고 있다. 1979년 골드만삭스 공동 회장이던 존 화이트헤드는 “우리 고객의 이익이 우선이다. 우린 경험을 통해 고객을 잘 섬길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안다”며 고객 우선의 원칙을 세웠고 이는 전사적인 가이드라인이 됐다.

하지만 촉망받던 이 회사의 젊은 직원 그레그 스미스는 2012년 뉴욕타임스(NYT)에 쓴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나는 이유’라는 기고에서 “이 회사는 고객을 하잘것없이 취급하고 고객 이익은 항상 뒷전이다. 고객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단 1분도 논의한 적이 없다. 회사에서 일하고 싶게 만들던 문화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폭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은 골드만삭스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수익만 불려 조직 안팎에서 더욱 불만을 샀다. 2005∼2007년 주택담보대출을 낀 파생금융상품을 팔며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지만 10년이 지난 지난해 4월에야 벌금 50억6000만 달러(약 5조8190억 원)를 내기로 법무부와 합의했다.

고객과 주주에게 정보를 충분히 알리지 않는 폐쇄성도 비판받는다. 기자가 골드만삭스코리아를 통해 본사에 직원 수와 인재 채용 특징 등을 물었으나 “답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 회사는 1999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주주총회가 열릴 때마다 “정보를 공개하라”는 주주와 시민단체의 요구가 빗발친다.

골드만삭스의 폐쇄성은 130년간 이어온 소수 파트너(지분을 보유한 고위 임원)들만의 경영 문화에서 나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파트너들은 자금 흐름과 사업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걸 오랜 기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파쇼(fascio·이탈리아어로 묶음 또는 결속)’라고 불리기도 한다.

골드만삭스가 체질 변신을 위한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회사는 폐쇄성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정보기술(IT)업을 키우고 있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회장은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공언한 뒤 실리콘밸리 창업가 출신인 마틴 차베스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승진시켰다. 블룸버그는 “골드만삭스 직원의 70%가 30세 안팎인 밀레니얼 세대이고 IT 인력은 9000여 명에 달한다. 페이스북의 총원 수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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