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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분노의 에너지’를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16-11-07 03:00업데이트 2016-1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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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재명 기자
 톨스토이의 대하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여기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나왔다. 진화생물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법칙을 이렇게 발전시켰다.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이 성공하려면 먼저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완전히 거꾸로 갔다. 실패 원인을 피하기는커녕 실패할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췄다.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는 ‘좋은 통치’의 조건으로 8가지를 제시했다. 법치, 투명성, 소통, 합의, 기회 균등, 효율성, 신뢰, 참여가 그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못한 8가지를 꼽으라면 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불행한 국가의 민초들은 각기 다른 불행한 이유로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필자도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 가장 소름 돋은 건 박 대통령을 향한 주최 측의 저급한 욕지거리가 아니었다. ‘하야(下野)는 대박이다’와 같은 조롱이 아니었다. 그곳에 모인 군중의 평범함이 무서웠다. 등산복을 입은 70대부터 어린아이까지 전 연령층이 뒤섞인, 그 부조리한 광경에 현기증이 났다.

 주최 측에선 “일곱 시간, 근혜 구속”을 선창했다. 중1 딸아이가 물었다. “일곱 시간이 뭐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동안 모호하다는 논란이야.”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딸아이가 반문했다. “보톡스 맞았다며?” 이미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2년 반이 넘도록 ‘7시간 논란’ 하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정부다. 그런 정부가 최태민, 최순실 일가의 부패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탐욕의 썩은 열매가 얼마나 많은 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지 제대로 알기나 하겠는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1868년 출간)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렇다 할 재능이나 특징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철저하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안타까울 때가 없다. 말하자면 이런 경우다.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할 수 있되 가문의 명예를 세워 볼 만한 업적이 전혀 없다. 용모는 뛰어나되 표정이 풍부하지 못하다. 그럴듯한 교육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써먹을 줄 모른다. 지성은 있되 본인의 사상이 없다. 가슴은 있되 관용이 없다.”

 도스토옙스키가 148년 전 대한민국에 남긴 소름끼치는 예견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반듯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그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건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 얘기에 나는 더 서글펐다. 차라리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면 지금보다 마음이 편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왜?’가 도무지 설명되지 않아서다.

 박 대통령이 2선 퇴진을 하든, 하야를 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민심은 그를 버렸다. 우리에겐 새로운 역사적 소명이 주어졌다. 대중의 분노는 혁명의 에너지다. 1960년 4·19, 1980년 5·18, 1987년 6·10이 그러했다. 역사는 2016년 11월을 혁명의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 예전과 다른 건 무자비한 공권력에 맞서 목숨을 건 혁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11월 혁명’은 짱돌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혁명이다. 용기가 아니라 지혜를 모으는 혁명이다. 한 사람을 권좌에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권좌를 어떻게 세울지가 목적인 혁명이다. 어떤 권력도 음습한 탐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투명한 유리창 안에 가두는 혁명이다. 증오와 편 가름의 정치를 퇴출시키는 혁명이다. 오로지 집단지성과 협치(協治)만이 생존하도록 정치 토양을 갈아엎는 혁명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는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혁명은 언제나 미완(未完)이었다. 정치권의 탐욕이 낳은 결과다. 1987년 6월 항쟁은 30년간 우리 사회를 좀먹은 분열과 대결 정치로 귀결됐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2012년 대선 당시 각각 ‘강경 친노(친노무현)’와 ‘시골의사 박경철’이라는 비선 실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이 집권했더라도 지금쯤 ‘실패한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11월 혁명’은 정치권이 원죄를 씻을 마지막 기회다. 아직까지도 한 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대중의 증오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야권 세력을 배제하는 게 그 출발이다. 누구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빈틈없는 견제와 균형을 담은 개헌은 그 결과물일 것이다. ‘제3지대’는 아직까지 성공한 전례가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이 성공할 수 있는 첫 시기라는 의미다. 정치권이 이번에도 분노의 에너지를 갈등의 에너지로 소비한다면 그들은 국정 농단의 또 다른 공범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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