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연구비 받은 노벨상 수상자 56%가 자율연구로 성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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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15년 수상자 104명의 논문 142편 연구비 분석

 한국은 규모 면에서 세계 6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연구비(4.29%)를 투입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과연 올바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월간 과학동아 기획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비를 집중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상 과학 부문(물리, 화학, 생리의학) 수상자 123명의 수상 핵심 업적에 해당하는 논문 161편을 모았다. 2000∼2008년 노벨상 수상자의 성과는 미국 터프츠대 의대 아티나 타치오니 교수 팀의 연구를 참고했다. 연구자는 논문 말미에 연구비 출처와 투자 형태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 정보가 없는 논문은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출처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총 104명의 논문 142편에 대한 연구비 정보를 파악했다.

 분석 결과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연구비 투자 방식은 국내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건 연구비 규모가 아니라 ‘지원 방식’인 것으로 드러났다.

○ ‘풀뿌리 연구’ 지원금이 노벨상 낳는다

 취재팀이 분석한 결과 소속 기관이 아닌 외부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은 사람은 88명(84.6%)이었다. 외부 지원 없이 노벨상 업적을 낸 경우도 16명(15.4%)으로 나타났다.

 외부 연구비 수혜자 88명 중에서 67명은 자신이 받은 연구비의 종류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그랜트(Grant)’와 ‘콘트랙트(Contract)’라는 형태로 나뉘었다. 그랜트는 과학자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한 다음 연구비 지원 기관의 승인을 거쳐 지원을 받는 방식이다. 흔히 국내에선 ‘상향식(Bottom-up)’이라고 부르는 형태다. 한국연구재단의 ‘이공학 개인 기초연구 지원 사업’ 등 한국의 기초연구비 지원 사업 일부가 성격상 그랜트에 속한다.

 콘트랙트는 이와 달리 국가가 먼저 연구 주제를 정해 놓고, 참여할 과학자를 선정해 연구비를 준다. 흔히 말하는 ‘하향식(Top-down)’ 연구로, ‘국책사업(기획과제)’이라고도 부른다.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연구 주제를 결정하려면 그랜트 방식의 지원이 높아야 하는 셈이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핵심 업적의 연구비를 외부에서 받았다고 기록한 88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9명(55.7%)이 그랜트를 받았다는 점이다. 외부 연구비를 받은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그랜트만으로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랜트와 콘트랙트를 모두 받아 연구한 경우는 12명(13.6%)으로 나타났다. 콘트랙트만 받았다고 기록한 수상자는 6명(6.8%)뿐이었다. 연구비 지원 형태를 기록하지 않은 사람은 21명(23.9%)이었으나, 이 경우도 대부분 그랜트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연구비를 그랜트로 지원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 등이 연구비 출처인 곳이 많았다. 반면 미래창조과학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연구개발 예산 중 상향식 과제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 美 투자 방식 살펴보니… 연구 가능성 믿고 5년마다 투자

 201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레프코위츠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NIH와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는데, 특히 HHMI의 경우 5년 동안 뭘 연구하든 상관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5년 뒤에는 그동안 이룬 학문적 성과에 대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분석 대상 중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은 NIH로 39명이었다. NSF가 2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NIH는 올해 약 36조 원(323억 달러)의 재정을 생명현상과 인간행동 연구에 투자했다. 그중 83%가량(약 268억 달러)이 외부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 가운데 콘트랙트에 해당하는 예산(9%)을 빼면 NIH는 전체 예산의 약 74%를 연구자들이 스스로 제안하는 상향식 제안 연구에 그랜트 형태로 투자했다. 올해만 3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NIH의 지원을 받고 있다.

 NIH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원을 받은 과학자는 매년 지난해의 연구 성과와 지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무가 없다. 연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다.

 송민경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 프로그램 디렉터는 “연구자가 연구 목표를 수정했다고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며 “모든 것은 연구비 지원 기간이 끝난 뒤 연구자가 이룬 과학적인 성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최영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jxabb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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