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요구 폭탄에 무더기 증인신청… ‘갑질’만 배운 초선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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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감기관 “선배의원보다 심해” 호소

 인사혁신처는 30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야당 초선 A 의원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A 의원은 최근 문제를 일으킨 일부 공직자의 재산 공개 자료를 요구했다. 인사혁신처는 법적으로 공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료를 제출했지만 A 의원은 “비공개 자료도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인사혁신처가 난색을 표하자 A 의원은 “그렇다면 (공직자 재산관리 등을 담당하는) 전·현직 공직자윤리위원장, 전·현직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장을 국감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나섰다.

 안행위 관계자는 “이 위원장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지금까지 국회에 증인으로 선 적이 없다. 만약 증인으로 채택된다면 앞으로 아무도 이 자리를 맡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난감해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적지 않은 초선 의원들이 ‘갑(甲)질’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대 의원 300명 중 초선은 132명으로 전체의 44%다. 이들은 국회 입성 때만 해도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요즘 초선 의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한 부처 관계자는 “센 권력을 쥔 양 들떠 있는 모습이 과거보다 (갑질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고 했다.
○ 국회 입성 4개월 만에 힘 들어간 어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초선 B 의원은 종합 국감의 증인 및 참고인 56명 중 12명을 혼자 신청했다. 의원 1인당 평균 신청 현황(1.86명)의 6배가 넘는 수치다. 국토위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 최고경영자(CEO), 항공사 관계자 등을 망라했다”며 “과거 국감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라며 혀를 찼다. 정무위원회, 국토위 소속 일부 초선 의원들은 국가 현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 경제 관련 부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선 C 의원이 요구한 ‘자료 폭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C 의원은 “최근 5년간 장·차관이 참석한 모든 회의의 회의록 일체, 장관의 공식·비공식 일정과 해당 일정의 세부 내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부처 관계자는 “그 많은 회의와 행사를 어떻게 다 찾아볼 수 있겠느냐”며 “피감기관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피감기관을 하대하는 초선 의원들도 적지 않다. 야당 D 의원은 피감기관 공무원들에게 “이러면 내년에도 볼 수 있을 것 같느냐”, “정권교체 되면 두고 보자” 등의 막말로 원성을 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E 의원은 피감기관 국·과장들을 수시로 의원회관으로 호출하고 있다. 보건복지위 산하 부처 관계자는 “업무의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달라며 국·과장들을 가정교사처럼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상임위 파악 미숙, 지역 민원, ‘한 방’의 유혹…

 더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무더기 증인 신청과 관련해 “지역 민원 관련 기업, 기관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해 놓고 현안 해결과 협상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전직 의원은 “대기업 CEO 등을 ‘묻지 마 신청’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다른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증인 채택에 ‘사감(私感)’이 깔려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초선 의원이 구태를 반복하는 것을 바꾸기 위한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초선 의원들은 전문성과 상관없이 상임위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며 “업무 파악이 안 되니 무더기 자료 신청, 피감기관 괴롭히기 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의원이 얼마나 많은 정책 개선을 이뤄냈는지로 평가하는 토대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대치 국면 부채질하는 ‘행동대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으로 촉발된 여야의 대치 국면에서도 초선들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례대표 출신의 F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장 공관을 점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민주당 일부 초선 의원들은 28일 의총에서 “원내지도부가 너무 약하게 대응하고 있다. 사회권을 확보해 야당 단독으로 국감을 진행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현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게 사실”이라며 “국회의원이 되기 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의정활동 대신 정쟁만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길진균 /세종=손영일 기자
#국감#인사혁신처#초선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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