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주빈은 푸틴? 중-러 ‘신밀월’ 과시의 장으로 만든 G20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4일 2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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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주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4일 오후 중국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 서호(西湖) 인근의 국제엑스포센터(HIEC). 이날 오후 3시 센터 4층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각 국 정상은 센터 2층에서 한 명씩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다가가 악수하는 가진 환영식과 단체 촬영을 했다. 단체 촬영을 마친 후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4층 원탁 회의실까지 올라갔다.

시 주석은 5분 이상 이동하는 동안 줄곧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는 중러 정상이 가장 앞에서 위로 오르고 다른 국가 정상이 뒤를 따르는 모습이 연출됐다. 중국 관영 중앙(CC)TV는 정상들이 회의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상당 부분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움직임에 맞췄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잠깐 시 주석 말을 붙여보다 말을 받던 시 주석이 다시 푸틴 대통령에게도 얼굴을 돌리자 그대로 걸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 같은 모습이 전 세계로 전해진 화면을 통해 노출된 것에 대해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여러 손님을 초대해 놓고 한 사람에게만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결례가 아닌가”고 의문을 나타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달 14일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푸틴 대통령을 ‘최고 주빈’으로 대접할 것이라고 보도한 것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 대표는 “중국은 G20 정상들의 단체 사진 촬영 등 현장에서 푸틴 대통령을 예우할 것”이라며 “중국은 푸틴 대통령이 고립되지 않았으며 적극적인 참가자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러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을 갖고 양자협력 강화, 국제현안에 대한 공조 강화 등에 뜻을 모았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시 주석은 “중러 양국은 전방위적인 전략적 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강화해 나가야 한다”면서 “상대국의 주권과 안전(안보), 발전이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확고히 지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외교부는 발표문에서 “두 정상이 공동으로 관심 있는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소개했다.

러시아가 하루 전 한국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중국이 하루 뒤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이날 비공식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정상회담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이날 중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러시아 브랜드 아이스크림을 선물한 것도 양국의 신 밀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당신에게 가져다 주기로 약속했다”며 “아이스크림 한 통을 통째로 들고 왔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누가 러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다달라고 부탁하고는 한다”며 “당신들이 쓰는 신선한 크림은 최고”라고 화답했다.

중러간 밀월은 시베리아 석유와 가스 등을 통한 경제 협력에서 군사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공화국을 합병한 뒤 서방의 제재를 받을 때는 러시아가 중국의 협력이 절실했으나 지금은 중국이 러시아에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 견제 전선이 점차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국제 중재재판소의 중재 판정과 한반도 사드 배치, 일본과의 동중국해에서의 갈등 심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 같은 대국 우군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모스크바(5월 9일)와 베이징(9월 3일)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에서 서로 ‘품앗이 참가’하는 등 신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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