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글 지도 반출, 85일 논의 끝에 보류한 결정장애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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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밀지도 데이터를 해외의 구글 서버로 반출해 전 세계에 서비스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구글의 요청에 어제 정부가 ‘재심의’를 결정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등 7개 부처와 국토지리정보원으로 구성된 ‘지도 국외 반출 협의체’가 6월 1일 세계 최대 인터넷업체인 구글에서 제출한 지도 정보 반출 요청건에 대해 85일이나 논의하고도 결정을 못하고 처리 시한을 60일 연장한 것이다.

한국의 정밀한 지도를 구글맵(구글의 지도 서비스)에 올릴 경우 국가 안보가 우려된다는 반대론과 4차산업 육성에 꼭 필요하다는 찬성론이 팽팽히 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껏 논쟁만 하다가 처리 시한을 하루 앞두고도 결정을 포기한 것은 관료들의 책임 회피 성향인 ‘변양호 신드롬’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협의체 참석자들이 대부분 과장급인 것을 보면 정부가 결론을 낼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구글을 통한 정밀지도 서비스는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드론 등 미래산업에 중요한 인프라다. 이런 인프라가 없어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차를 국내용과 해외용으로 구분해 만들었고 젊은층은 포켓몬고도 즐길 수 없었다. 정부가 정밀지도 정보의 사용 범위를 국내로 묶어둘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안보에 틈이 생겨서도 안 된다.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집의 지붕 색깔까지 식별할 수 있는 것이 구글의 위성정보 서비스인 구글어스다. 여기에 정밀지도를 합치면 북한이 포탄을 청와대나 군사시설 등 원하는 지점에 떨어뜨리도록 위치값을 조정할 수 있는 첨단 군사정보가 돼버린다.

정부가 안보와 산업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왜 못 내놓는지 안타깝다. 이스라엘은 미국 의회 로비를 통해 1997년 구글어스에서 보안시설을 가리도록 한 ‘이스라엘에 관한 상세 위성 이미지 수집 및 배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최상의 한미 관계’를 자랑하는 정부는 11월 23일 처리 시한까지 이스라엘식 해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구글 지도 반출#한국 정밀지도#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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