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36人의 ‘빗속 탭댄스’에 빠져… 뉴욕이 춤을 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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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상징으로 성장한 美 여성무용단 ‘더 로케츠’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한 몸처럼 춤추며 뉴욕을 소개하는 ‘더 로케츠’ 무용단은 2025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뉴욕의 상징이다. 여름 시즌 공연인 ‘뉴욕 스펙태큘러’의 한 장면으로 맨해튼의 마천루를 상징하는 배경 앞에서 36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더 로케츠 무용단 제공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한 몸처럼 춤추며 뉴욕을 소개하는 ‘더 로케츠’ 무용단은 2025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뉴욕의 상징이다. 여름 시즌 공연인 ‘뉴욕 스펙태큘러’의 한 장면으로 맨해튼의 마천루를 상징하는 배경 앞에서 36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더 로케츠 무용단 제공
“남는 표 삽니다. 남는 표 사요.”

지난달 22일 오후 1시경 미국 뉴욕 맨해튼 50번가 ‘라디오시티뮤직홀’ 앞. 흰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한 백인 남성이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기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현금 100달러(약 11만4000원)를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서 보여줬다. 극장 측이 세계 미디어를 상대로 주최한 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를 관객으로 오해한 암표상이었다.

이 극장에선 1925년 창립된 미국 여성 무용단 ‘더 로케츠(The Rockettes)’가 1932년부터 다양한 군무(群舞)를 선보이며 뉴욕 명소 및 명물을 소개하는 공연을 85년째 해오고 있다. 이렇게 오래된 데다 관객 6000명을 넘게 수용할 수 있는 큰 극장임에도 암표상이 있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동안 크리스마스 시즌 전후로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Christmas Spectacular)’란 제목의 공연만 해오던 로케츠 무용단이 지난해 여름부터 90분짜리 ‘뉴욕 스펙태큘러’란 새 공연을 선보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언론으로는 본보가 유일하게 참석한 이날 미디어 행사에서는 ‘뉴욕을 상징하는 공연’에 참여해 뉴욕의 꽃으로 불리는 무용수들의 일상과 공연 준비 과정 등을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다.

2025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는 로케츠 무용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무용수 재키 에이트컨 씨(27)는 “아주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10대가 되면서 뉴욕을 상징하는 로케츠 무용단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후부터 로케츠는 내 꿈이었다”고 말했다.

세계 언론을 상대로 더 로케츠 무용단을 소개하는 행사에 참석한 무용수 재키 에이트컨 씨(왼쪽)와 로라 자코웬코 씨. 27세 동갑인 이들은 “로케츠 무용단은 춤을 사랑하는 많은 댄서들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선 거의 ‘기계적으로’ 같은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세계 언론을 상대로 더 로케츠 무용단을 소개하는 행사에 참석한 무용수 재키 에이트컨 씨(왼쪽)와 로라 자코웬코 씨. 27세 동갑인 이들은 “로케츠 무용단은 춤을 사랑하는 많은 댄서들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선 거의 ‘기계적으로’ 같은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무용단은 엄격한 단원 선발로 유명하다. 일단 신체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매년 4월경 ‘결원’을 채우기 위해 하는 오디션에 참가조차 할 수 없다. 특히 키가 168∼179cm여야 한다. 커도 작아도 안 된다. 오디션에선 발레 탭댄스 재즈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춤 실력을 이틀간 평가받는다. 무용단 관계자는 “경쟁률은 결원 수와 지원자 규모에 따라 해마다 다르지만 치열할 때는 500 대 1, 800 대 1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되면 주 6일, 하루 6시간씩의 고강도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에이트컨 씨는 “아주 작고 섬세한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나 자신뿐 아니라 함께 공연하는 다른 무용수들과의 호흡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며 “연습과 훈련을 충분히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상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무용수는 총 36명이지만 전체 무용단원은 80명이다. 40명씩 2개 팀으로 나눠 연습한다. 일종의 특별공연인 여름 시즌 ‘뉴욕 스펙태큘러’는 주 6일, 일 1회 또는 2회 공연이지만, 최고 성수기에 공연되는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는 주 7일, 일 2∼5회 공연한다. 에이트컨 씨는 “하루에 5회 공연이 있는 날은 한 팀은 2회, 다른 한 팀은 3회 공연을 번갈아 하는 구조”라며 “실제 공연은 36명이 하지만 4명의 여유 인원을 두는 건 부상자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케츠 무용단의 상징은 단연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군무(precision dance)’다. 폭스뉴스 허핑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무용단에 대해 “완벽하고 아름다운 인간 춤 기계(a perfect, beautiful human dancing machine)”란 찬사를 보냈다. 에이트컨 씨와 동갑내기인 로라 자코웬코 씨는 “무대 위에서 춤 동작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내 몸의 근육들이 그 동작을 기억하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 몸에 나를 맡기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케츠 무용단은 맨해튼 내 최고의 퍼레이드로 꼽히는 ‘메이시 퍼레이드’ 피날레를 장식하고, 프로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행사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뉴욕 공연이 없을 때는 미국 내 주요 도시를 순회한다.

뉴욕 스펙태큘러나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 모두 로케츠 무용단의 다양한 의상과 일사불란한 춤 동작이 공연의 중심이다. 이 두 공연 모두 규모와 화려함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공연에 대해 “쇼 이름 그대로 스펙태큘러(Spectacular·‘화려한 장관’)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공연장인 ‘라디오시티뮤직홀’은 수용 가능 관객이 무려 6015명이다. ‘세계 최대 실내극장’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미국의 대표 부호(富豪) 록펠러 가문이 암흑기인 대공황 시절 ‘평범한 뉴요커도 큰 경제적 부담 없이 고품격 대중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 그것을 통해 희망을 선물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역사적 공간이다. 무대는 가로 44m, 세로 20m로 ‘간이 축구장’만 하다. 에미상, 토니상, MTV 비디오 어워드 등 대형 시상식이 종종 열리고 인기 가수들의 리사이틀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

스펙태큘러 공연은 이 극장의 큰 덩치를 최대한 활용한다. 겨울 공연에선 산타클로스가 하늘을 나는 눈썰매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오는 여정을 3차원(3D) 입체 영화처럼 구현한다. 3D 안경을 쓴 관객들은 산타와 함께 맨해튼 명소들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여름 공연에서도 높은 천장과 넓은 벽면을 일종의 스크린처럼 활용해 환상적인 느낌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고 무용단 측은 밝혔다.

여름 공연의 압권 중 하나는 로케츠 무용단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빗속에서 노란 우비를 입고 분홍 우산을 들며 탭댄스를 추는 장면. 무용수 자코웬코 씨는 “관객들이 처음엔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가짜 비’라고 생각했다가 탭댄스가 시작되면서 발동작과 함께 무대 바닥의 빗물이 튀는 걸 보면서 ‘와, 진짜 비다’라며 환호성을 지른다”고 전했다.

극장 관계자는 “이 장면에 사용되는 물의 양만 500갤런, 약 1892L에 이른다”며 “빗속 탭댄스가 끝나면 무대 바닥의 작은 배수로를 통해 물을 빼서 탱크에 저장했다가 다음 공연에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로케츠 무용단은 여름 공연에서 타임스스퀘어의 야외 전광판으로, 뉴욕 패션위크의 런웨이 모델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등으로 분장하며 90분 공연 동안 잠시도 한눈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연전문 매체들은 “뉴욕 스펙태큘러는 사랑하는 뉴욕에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공연이고, 로케츠 무용단은 뉴욕에서 만나는 영원한 연인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곤 한다.


▼슬로비디오처럼… 대포 맞고 쓰러지는 도미노 퍼포먼스 ‘압권’▼
 
겨울 시즌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 공연 85년째

 
더 로케츠 무용단은 1932년부터 85년째 겨울 시즌 공연인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를 공연하고 있다. 나무 병정 의상을 입은 무용단이 촘촘히 서 있다가 포탄을 맞고 슬로비디오처럼 쓰러지는 도미노 퍼포먼스는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더 로케츠 무용단 제공
더 로케츠 무용단은 1932년부터 85년째 겨울 시즌 공연인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를 공연하고 있다. 나무 병정 의상을 입은 무용단이 촘촘히 서 있다가 포탄을 맞고 슬로비디오처럼 쓰러지는 도미노 퍼포먼스는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더 로케츠 무용단 제공
로케츠 무용단의 겨울 시즌 공연(보통 11월 중순∼1월 초순)인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는 1932년부터 시작돼 올해 85년째를
맞는다. 8∼10개의 단막극을 모아놓은 이 공연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진화를 계속해 왔지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재연하는
장면과 로케츠 무용단이 ‘나무 병정’으로 분장해 일사불란한 행진을 하는 장면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6명의
나무 병정이 일렬로 촘촘히 서 있다가 대포를 맞고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스펙태큘러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무용단에서 고참에 속하는 크리스틴 잰치 씨(31)는 “도미노 공연은 병정 복장을 하고 큰 모자까지 쓴 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두 팔을 앞사람의 겨드랑이에 끼운 채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아주 천천히 뒤로 쓰러지는 일이 관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데다 팀워크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잰치 씨는 “4, 5명씩, 8∼10명씩 소규모로 연습을 반복한 뒤 최종적으로 36명이 모두 참여하는
리허설을 진행할 정도”라며 “특히 단원들끼리 확고한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이 ‘나무 병정의 행진’에서 로케츠 무용단은 남자 군인들 못지않은 절도 있는 모습을 보인다. 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들 중에선
‘별도의 남자 무용단이 따로 있나 보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외홍보 담당관인 그레이스 해리스 씨가 전했다. 그는 “특히
로케츠 무용단에 대해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선 ‘도미노 퍼포먼스를 했던 남성 무용단은 어디 갔느냐’고
공연장 관계자들에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공연 전문매체인 ‘타임아웃’은 “로케츠 무용단의 나무
병정 퍼포먼스를 자세히 보면 36명의 병사가 수없이 교차하는 행진을 거듭하면서도 옷깃만 스칠 뿐 몸이 조금이라도 부딪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치열한 연습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라디오시티뮤직홀#더 로케츠#the rocke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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