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恨 싣고… 고려시대에도 경주는 있었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6-07-14 03:00수정 2016-07-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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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핵심 사찰이었던 황룡사 기와 등 500여 점의 중요 유물 선보여
경기 연천군 고랑포리에 있는 경순왕릉은 사적 제244호로 지정돼 있다. 1904년에 그려진 경순왕 영정(아래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무고한 백성들이 길에서 참혹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935년 10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은 장남 마의태자(麻衣太子)와 일부 신하의 만류를 물리치고 고려에 항복을 결정했다. 국력이 쇠해 신라의 영토는 경상도 일부로 쪼그라들었고 사방은 고려와 후백제에 포위당한 뒤였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한 희생만 더할 뿐이라는 게 경순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태자는 신라 천년 역사를 스스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곧 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풀뿌리를 캐며 여생을 보냈다. 경순왕의 막내아들도 화엄사에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이로부터 한 달 뒤 경순왕은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고려 수도 개경으로 출발했다. 온갖 짐을 실은 수레 행렬이 장장 12km에 달했다. 신라 핵심 인력과 알짜배기 문물, 인프라가 고려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해 12월 신라 천년왕도(千年王都) 금성(金城)은 경주(慶州)로 영원히 바뀌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고려시대의 경주’ 특별전을 최근 개최했다. 흔히 신라 왕도로서만 기억되는 경주의 역사적 변천을 고려시대에 초점을 맞춰 재조명한 전시다.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국보 126호)를 비롯한 500여 점의 중요 유물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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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교체기 옛 왕조의 문물에 대한 파괴와 계승이 동시에 이뤄지기 마련이다. 나말여초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신라 왕권의 상징인 경주 월성과 동궁은 석재와 기와가 재활용되는 등 사실상 폐허로 바뀌었다. 그러나 신라를 이어 불교국가를 표방한 고려는 신라 국가사찰이었던 황룡사를 계속 후원했다. 이번에 전시된 고려시대 황룡사의 기와와 청자 출토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원나라가 고려를 정벌하면서 굳이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까지 침입해 황룡사를 파괴한 건 이곳이 고려 때도 여전히 핵심 사찰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9월 4일까지. 054-740-7530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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