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사회

[광화문에서/이진한]갈 길 먼 웰다잉법

입력 2016-07-05 03:00업데이트 2016-07-05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지난달 25일 부산 해운대에서 250여 명의 폐암 환자와 보호자, 의사들이 2km 남짓 거리를 함께 걷는 ‘파란풍선 마라톤 걷기대회’가 열렸다. 17년째 한국인의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의 예방과 금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대한폐암학회가 마련한 행사였다.

2km는 살짝만 걸어도 숨이 찬 폐암 환자들에게는 아득하게 멀고 긴 거리다. 하지만 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곳곳에서 폐암 전문의와 부산 지역 고교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교통정리와 길 안내를 하며 한마음이 됐다.

폐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초기에 통증 같은 증세가 없어서 가장 늦게 발견되는 대표적 암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유명한 ‘글리벡’ 같은 혁신적인 치료제도 없다. 최근 면역항암제가 나와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었던 폐암 환자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면역항암제가 마법의 약처럼 폐암 치료의 새 길을 열었다고 믿는 분들에게 죄송한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한국에 들어온 이 약은 일부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고 폐암 환자의 평균 수명은 늘리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 효과에 대한 검증도 안 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폐암 등 많은 말기 암 환자는 기존 항암제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더 독한 항암제로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인지 아니면 호스피스를 통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말이다. 대다수 말기 암 환자는 여러 가지 항암제를 사용해 보다가 결국은 병원 또는 집에서 힘들게 삶을 마감한다.

절망 속의 말기 암 환자 7명 중 1명(13.8%)은 덜 고통스럽게, 좀 편안하게 삶을 정리하고자 호스피스 병동을 선택한다. 국내 호스피스 병상은 현재 1100개 정도 된다. 국내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려면 병상 수가 적어도 2500여개는 돼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경우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만 겨우 입원이 가능할 정도다. 적잖은 환자가 병원 밖에서 입원실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거나 입원하자마자 세상과 작별을 하는 셈이다. 물론 병상 수만 늘리는 게 최선은 아니다. 병동의 질적 관리, 지역적 안배를 통한 효율적인 시스템 마련, 가정 호스피스 활성화 등이 병행되는 종합적인 호스피스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은 40병상의 호스피스 병동을 만들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학병원급으로는 꽤 큰 규모로 상당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암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국립암센터가 지난해 10병상 정도의 호스피스 병동을 어렵게 만든 걸 보면 서울대병원이 얼마나 힘든 결심을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올해 1월 국회에서 웰다잉법이 통과되면서 많은 말기 암 환자가 품격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한 호스피스 제도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법 통과 후 반년이 지났음에도 연명치료나 호스피스와 관련해 정부가 추가로 내놓은 조치는 거의 없다. 웰다잉법 시행은 내년 8월부터지만 당장 말기 암과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겐 시간이 없다. 치료의 지속 여부를 본인이 결정하는 연명치료 문제도 병원마다 기준이 달라 혼선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웰다잉법 관련 부서가 호스피스 정책은 질병정책과, 연명치료는 생명윤리과로 이원화돼 있는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 마련과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서는 조직 통합이 먼저라는 것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 통과 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친형이 연명치료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속히 웰다잉법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고 있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