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선은 ‘오늘의 시인총서’와 함께 민음사가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다. 1973년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등 4권으로 시작됐다. 당시에는 일본어판을 재번역한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원전 번역과 원문을 함께 실어 큰 주목을 받았다. 1차로 모두 80권이 나왔다.
1994년부터 2차로 개정판 63권을 냈다. 민음사는 이번에 3차로 재단장한 책 15권을 시작으로 처음 낼 당시 목표했던 100권을 낼 계획이다. 일단 내년까지 50권이 나올 예정이다.
새로 나온 세계시인선에는 국내 초역한 책 5권이 포함됐다. 소설가로 인기 있는 찰스 부코스키의 대표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비롯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거물들의 춤’, 시대의 불안을 끌어안은 프랑스 시인인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가 있다. 로마 시인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과 ‘소박함의 지혜’도 만날 수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김수영의 문학성도 재조명했다. 극작가 브레히트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에는 초기 작품인 ‘가정기도서’가 담겨 시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꽃잎’은 현실 참여 작가로 알려진 김수영이 꽃에 대해 노래한 작품을 소개한다. 히브리 시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욥의 노래’는 고결한 품성을 지닌 욥이 재산과 자식을 모두 잃고 극심한 병까지 얻지만 그 누구도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다.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모티브는 빅토르 위고에게 영감을 줘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을 창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시인들은 세계시인선이 영혼의 자양분이 됐다고 말한다. 김경주 시인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허연 시인은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고 회고했고, 최승호 시인은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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