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창덕]기업 유죄 추정의 나라

김창덕 산업부 기자 입력 2016-05-25 03:00수정 2016-05-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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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기자
“규제가 많으면 기업들은 운동장을 좁게 쓸 수밖에 없습니다. 터치라인 부근을 포기하고 센터포워드에만 공을 주면 수비들을 뚫어낼 수가 없지요.”

축구 중계를 보다 보면 해설자들은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측면 공격수(윙 포워드)와 공격 진영 깊숙이 파고든 측면 수비수(윙 백)들이 양쪽 터치라인 부근을 공략하면 골문 근처를 지키던 상대 수비수들의 간격은 자연히 벌어진다. 중앙에서 공을 연결받은 최전방 공격수(센터포워드)가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다양한 규제들은 기업들이 활동하는 운신의 폭을 줄인다. 결국 이제까지 해오던 사업, 해오던 방식만 고집하게 된다. 결과는 뻔하다.

이 얘긴 23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회의실에서 나왔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출범시킨 글로벌기업지배연구소 창립세미나 사회를 맡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이었다. 조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를 재벌을 흔드는 통로처럼 활용해선 안 된다”며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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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글로벌기업지배연구소장)와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제들이 제조업체들의 투자를 막고 금융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날 세미나 주제에 맞게 대부분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규제들이 거론됐다. 국내 인터넷은행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KT와 다음카카오가 대기업 규제, 금산분리 규제 등으로 인해 지분을 최대 10%(의결권은 4%)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전 교수는 “은행이 ‘대기업 사금고’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만들어놓은 각종 규제들이 새로운 성장산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인들의 ‘모럴 해저드’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기업의 이익, 대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다수의 근로자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업을 ‘잠재적 가해자’로 삼는 것 또한 바람직하진 않다. 하물며 범죄인들도 죄가 입증되기 전까진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우지 않나.

국내에 존재하는 규제들은 기업 또는 오너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걸 우려해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이른바 ‘기업 유죄 추정의 원칙’이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인들이 상시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너무 촘촘한 그물을 치면 잡고 싶었던 월척보다 잡지 말아야 할 어린 물고기가 더 많이 걸리는 법이다. 나쁜 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쳐 놓은 규제의 그물이 경제 성장에 이바지할 좋은 기업들에 악영향을 준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쁜 기업이 나쁜 것이지 모든 기업이 나쁜 건 아니다.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기업#규제#기업 유죄 추정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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