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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기자의 눈/김동혁]‘강남 묻지마 살인’ 희생자 오빠의 분노

입력 2016-05-24 03:00업데이트 2016-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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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 너희들 다 나와.”

22일 오후 8시 30분 서울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의 피해 여성을 위해 마련된 추모 현장에 한 남성이 고함을 지르며 소동을 일으켰다. 여성들이 돌아가며 “여성혐오(여혐)가 사회에 만연했다”는 규탄 발언을 하고 있을 때였다. 경찰의 제지로 물러선 이 남성은 “죽은 사람과 관련도 없는 자기들만의 얘기를 하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피해 여성의 친오빠였다. 여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여혐과 반(反)여혐의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현실에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건 직후인 18일부터 마련된 추모 현장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다운 20대 여성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한창 예쁠 나인데…”라며 빨간 립스틱이 담긴 노란 쇼핑백을 가져온 50대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일부 누리꾼이 ‘여혐범죄’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일부 극우 누리꾼이 ‘여혐론’을 반격하는 글을 올리면서 추모 분위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하나요?’라고 적힌 쪽지 위에 ‘남자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라는 쪽지가 덧붙었다. 서로 간에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다. ‘성대결’의 장으로 변해버린 추모 현장을 팝콘을 먹어가며 ‘관람’하는 철없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닷새 동안 추모 현장을 지켜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 여성의 헛된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공감(共感)하기보다 각자 자기주장을 외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온 국민이 둘로 나뉘어 상대를 비난하고 배려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22일 추모 현장을 찾은 안모 씨(35·여)는 “대한민국은 정글 같다”며 서로가 으르렁거리며 편을 갈라 다투는 모습을 비난했다.

22일 밤 12시 무렵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강남역 추모 현장의 쪽지와 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에 나선 이모 씨(27)는 “24일 비 소식이 있다. 쪽지가 젖기 전에 추모의 기억을 간직하려 한다”고 했다. 시원한 빗줄기가 먼지투성이 같은 우리 사회를 깨끗이 씻어내 차분히 가라앉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김동혁·사회부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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