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슈퍼 히어로들의 패싸움, 알고 보니 마블-DC의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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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흥행으로 본 원작만화 읽는 법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원작 ‘시빌 워’의 한 장면. 5, 6명씩 편을 이뤄 겨루는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수십 명의 슈퍼히어로가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 이처럼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등 수많은 개별 주연급 슈퍼히어로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고 한꺼번에 등장하는 작품을 ‘크로스오버 이벤트’라고 한다. 사진 제공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원작 ‘시빌 워’의 한 장면. 5, 6명씩 편을 이뤄 겨루는 영화와 달리 원작에서는 수십 명의 슈퍼히어로가 대규모 전투를 벌인다. 이처럼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등 수많은 개별 주연급 슈퍼히어로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고 한꺼번에 등장하는 작품을 ‘크로스오버 이벤트’라고 한다. 사진 제공 마블
왜 ‘슈퍼히어로(Super hero)’인가?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관은 슈퍼히어로 영화로 도배됐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국내에서만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앞서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도 세계적으로 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TV를 켜면 곳곳에 ‘슈퍼걸’ ‘플래시’ 등 네다섯 편의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방영된다.

2010년대 이후 영화 ‘어벤져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흥행 최상위권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관련 게임, 장난감, 테마파크 등 수많은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영화 ‘저스티스리그’ ‘닥터 스트레인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원더우먼’ ‘플래시’ ‘아쿠아맨’ 등 연간 4, 5편의 대작이 향후 5년간 계속 개봉한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원작의 힘이라고 말한다. 즉, 미국 만화 출판사인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가 발행하는 방대한 ‘슈퍼히어로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 성공의 원천이라는 것. 실제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봉되면 서점에선 원작 만화 판매량이 급증한다.

‘요즘 슈퍼히어로가 얼마나 심오한데’라고 주장하는 지인(자녀, 애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슈퍼히어로 ‘초보 덕후’가 되고 싶다면, 혹은 대세가 된 슈퍼히어로물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원작 읽는 법’을 배워 보자. 책 ‘슈퍼히어로 전성시대’를 낸 김봉석 에이코믹스 편집장, 블로그 ‘부머의 슈퍼히어로’를 운영하는 미국 만화 번역가 이규원 씨, 국내에서 슈퍼히어로 만화를 가장 많이 출판한 ‘시공사’ 백소용 책임편집자에게 특강을 들어봤다.

팁1: 역사부터 알자

전문가들이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슈퍼히어로물의 역사에 대한 이해. 그간 나온 영화의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원작 만화의 역사는 무려 90년에 육박한다.

슈퍼히어로의 시작은 ‘벅 로저스’(1929년). 외계인과 싸우는 미국 만화 최초의 슈퍼히어로다. 이후 1930년대 슈퍼히어로 초기 만화들은 미국 내 비누회사가 판촉물로 나눠 주면서 본격화됐다. 판촉물이 인기를 얻자 30∼60쪽 잡지 형태의 만화가 발행됐고 이런 잡지 6∼12개가 합쳐져 만화 단행본이 됐다.

1935년에는 DC코믹스의 첫 만화잡지인 ‘뉴펀’이 발매됐고 이듬해 ‘얼굴을 가리고 복면을 쓴’, 즉 현재 슈퍼히어로의 원형이 된 ‘더 팬텀’이 신문에 연재됐다. 1938년에는 슈퍼히어로 대명사 슈퍼맨이, 이듬해 배트맨이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슈퍼히어로 만화 전성기가 시작된다. 슈퍼히어로가 독일군을 물리친다는 설정의 ‘캡틴 아메리카’가 인기를 끌었다.

슈퍼히어로 만화의 본질이 크게 달라진 것은 1960년대.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로 ‘아동용’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과거 작품과 달리 사회 속 ‘마이너리티’인 뮤턴트(돌연변이)가 주인공인 ‘엑스맨’, 가난한 학생이 슈퍼 영웅이 되는 ‘스파이더맨’ 등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선악이 공존하는 캐릭터가 탄생됐다. 그러나 1970년대 슈퍼히어로 만화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사람들이 영화, TV 등 영상매체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 ‘슈퍼맨’ 역시 새로운 만화보다는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영화 ‘슈퍼맨’(1978년)이 주목받았다.

침체되던 슈퍼히어로 만화가 부활한 것은 1986년. 앨런 무어의 ‘왓치맨’,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 영웅의 인식론적 세계, 과격한 묘사, 사회 문제를 담는, 즉 성인이 읽기 좋은 슈퍼히어로 만화가 발표되면서 위상이 격상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술성이 강조되면서 1990년대에는 소수만 열광하는 문화로 전락한다. 마블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정도.

2000년대 슈퍼히어로 만화가 다시 각광을 받는다. 2000년 개봉한 영화 ‘엑스맨’을 시작으로 ‘다크 나이트’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흥행하면서 원작이 다시 주목받았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많아진 이유는 40, 50대 초반인 잭 스나이더(배트맨 대 슈퍼맨), 브라이언 싱어(엑스맨 시리즈), 앤서니 루소(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등 미국 주요 감독들의 입김이 작용했다. 1960, 70년대 어린 시절 슈퍼히어로 원작에 빠져들었던 이 세대는 성인이 된 후 원작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영화화에 나섰다.

여기에 마블을 인수한 디즈니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면서 다시 슈퍼히어로 전성시대가 됐다. 김 편집장은 “슈퍼히어로 캐릭터와 스토리가 너무도 많아 이를 조합해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며 “원작 만화에서는 디테일한 설정, 캐릭터 특성, 스토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팁2: 슈퍼히어로 그림 문법에 익숙해지기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 모임인 ‘저스티스 리그’ 모습. TM & ⓒ 2016 DC Comics. All Rights Reserved.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 모임인 ‘저스티스 리그’ 모습. TM & ⓒ 2016 DC Comics. All Rights Reserved.
슈퍼히어로 만화를 읽은 독자 중 상당수는 “어렵다”고 말한다. 슈퍼히어로 만화 그림이 한국 독자에겐 낯선 탓이다.

슈퍼히어로 만화는 각 컷의 연결성보다는 개별 컷의 이미지와 대사를 중시한다. 스토리 위주로 만화를 보는 한국 독자는 액션의 동선이 컷마다 이어지는 일본 만화 형식에 익숙하다. 액션이 한두 컷으로 끝나 액션 연출이 빈약한 데다 심리적 대사가 많은 슈퍼히어로 만화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정보량도 국내나 일본 만화의 5∼10배에 달할 정도.

이 씨는 “1960∼80년대 슈퍼히어로 만화는 액션보다는 내레이션으로 스토리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 ‘그림 소설’이라고 할 정도”라며 “2000년대 들어 슈퍼히어로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영화 스타일로 그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스토리보드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가 만화책도 그린다는 것. 최근에는 일본 망가 스타일까지 흡수한 슈퍼히어로 그림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또 같은 ‘배트맨’이라도 만화책에 따라 캐릭터 디자인이 달라지는 등 수많은 형태가 존재한다. 백 편집자는 “캐릭터 소유권을 갖고 있는 마블, DC 코믹스가 전체적으로 기획을 한 후 스토리, 그림 작가를 고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팁3: ‘크로스오버 이벤트’를 이해하라

이처럼 슈퍼히어로 만화는 캐릭터가 많고 세계관이 방대하다. 스파이더맨 등 인기 캐릭터는 스토리가 1000개 이상 나왔을 정도. 같은 슈퍼맨이라도 작가에 따라 그림체, 작품 분위기, 세계관이 천차만별이다. 한 작가가 지구에서 활약하는 슈퍼맨을 그려 왔다면 다른 작가는 ‘지구2’를 설정해 새로운 슈퍼맨 이야기를 구성한다. 또 다른 작가는 ‘지구3’에서 슈퍼맨을 악당으로 그린다. 슈퍼히어로 원작에는 이런 식의 평행우주, 즉 멀티버스(multiverse) 작품이 많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설정상 큰 차이와 각종 오류가 생긴다. 이에 마블, DC 코믹스는 정기적으로 한 번씩 세계관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사건을 담은 스토리를 발표한다. 이를 ‘크로스오버 이벤트’라고 부른다. 슈퍼히어로들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메인 줄거리를 발간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과 관련된 개별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별도의 만화로 진행하면서 난잡해진 세계관을 정리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시빌 워’. 동명 원작은 수십 권이나 된다.

이 복잡한 만화를 어떤 순서로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출간 순서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 출판되지 않은 작품이 많은 데다 너무 방대하다. 따라서 초보 단계는 영화 원작부터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본 후 미진했다면 이 영화의 뼈대가 된 ‘배트맨 허쉬’ ‘인저스티스: 갓 어몽 어스’ ‘저스티스 리그’ 등을 읽는 식이다. 이 씨는 “과거에 출간된 슈퍼히어로 만화를 2000년대 설정에 맞게 리부트한 ‘얼티멋 유니버스 시리즈’ ‘뉴52’ 시리즈 위주로 보는 것도 좋다. 영화와 비슷해 괴리감이 적다”고 말했다.

중급은 ‘캐릭터 중심’으로 완독하는 것이다. 배트맨이 좋다면 ‘배트맨: 이어 원’ ‘배트맨: 롱 할로윈’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을 출간 순서대로 읽는다. 혹은 ‘작가 중심’으로 작품을 보는 것도 한 방법. 그림이 실사에 가까운 앨릭스 로스, 한국 출신 작가 짐 리(본명 이용철), ‘배트맨: 이어 원’을 그린 데이비드 마추켈리, ‘시빌워’와 ‘킥애스’로 유명한 마크 밀러 등이 추천됐다. 이 단계를 넘은 고급 독자들은 앞서 말한 크로스오버 이벤트 작품인 ‘시빌 워’ ‘크라이시스 온 인피닛 어스’ ‘제로 아워’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하우스 오브 엠’ 등에 도전한다.

팁4: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라

슈퍼히어로 원작 만화의 양축은 DC와 마블 코믹스. 두 회사가 만든 캐릭터는 성격이 판이하다.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DC나 마블 중 한 곳을 중심으로 작품을 보는 것도 좋다.

30, 40대가 어린 시절 익숙했던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등은 DC코믹스 캐릭터다. 완전무결한 데다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람들을 구하는 정통파 영웅 캐릭터다. 진지하고 무겁다. 반면 마블 캐릭터인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등은 다소 트렌디하고 다중적이다. 김 편집장은 “DC는 서사나 장르적 재미에 치중해 확실한 영웅신화 스토리, 확실한 스릴러로 가는 식”이라며 “반면 마블은 현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내용이 비교적 쉽고 공감도가 높다”고 말했다.

슈퍼히어로 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긍정적이다. 비교 대상인 SF ‘스타워즈’ 시리즈나 판타지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달리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만화 속에 넣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초인등록법을 다룬 ‘시빌 워’는 9·11테러 이후의 인권보다는 안보에 치우친 미국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최근작인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이 꼭 끼는 쫄쫄이 위의 빨간 팬티를 더 이상 입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슈퍼맨의 남근과 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빨간 팬티가 마초적 이미지보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요즘 사회에서는 부담스러워진 것.

최근 슈퍼히어로 만화에는 높아진 여성의 위상을 반영해 ‘미즈마블’ ‘스파이더우먼’ 등 여성 히어로도 많아지고 있다. 김 편집장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아이언맨 슈트가 머지않은 현실이 된 데다, 게임에 익숙한 대중은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당분간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힘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슈퍼히어로#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배트맨 대 슈퍼맨#마블코믹스#dc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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