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오바마,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도 찾아라

장원재 도쿄 특파원 입력 2016-05-02 03:00수정 2016-05-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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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2014년 여름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원폭 돔이었다. 바로 위에서 원폭이 터져 수직으로 핵 폭풍을 맞는 바람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고 했다. 안에 있던 이들은 전원 즉사. 폭격 직후 사진을 보면 시내에서 이 건물 외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자료실에는 뒤틀린 철문, 구부러진 철근, 납작해진 병 등이 보존돼 있었다.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참혹했다.

당시 원폭 사용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평화기념공원은 방문자들에게 원폭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히로시마의 인구 35만 명 중 14만 명이 원폭 직후 숨졌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상처다. 히로시마의 가장 큰 행사는 원폭투하일인 8월 6일 열리는 위령식 겸 평화기념식이다. 시장의 큰 임무 중 하나도 핵실험을 한 국가에 항의 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북한도 벌써 몇 번이나 이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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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기념물도 있다. 서편에는 한반도 출신 희생자들을 기리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희생자 10%가량은 한반도에서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도 제국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동원된 무기에 희생된 이들의 기막힌 사연. 이들에게 원폭은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위령비 옆에는 ‘조선오엽’이라는 작은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한일 대학생들이 양국 우호를 기념하면서 2011년 8월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방문 당시 팻말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달 전 한국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밤새 나무를 뽑아 갔다고 했다(이후 양국 대학생들이 “악의에 굴하지 않겠다”며 2015년 8월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었다).

공원에는 한반도 관련 기념물이 하나 더 있다. 남동쪽에 있는 5m 높이의 시계다. 히로시마 재일동포 중 북송사업에 참가한 이들이 1959년 세운 것이다. 니가타(新潟)를 거쳐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은 기대와 달리 차별과 박해에 시달렸다. 일본에서 원폭을, 조국에서 냉대를 경험한 이들 역시 기막힌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최근 일본 언론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5월 말 히로시마를 방문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 일색이다.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해 ‘사과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고 한다. 피해자들도 “핵 없는 세상을 만든다면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는 반응이다.

임기 내내 ‘핵 없는 세상’을 외치던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돔 앞에서 연설을 한다면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다만 한국에선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일본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꼭 발길을 돌려 한국인 위령비도 찾아갔으면 한다.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곳’에서 원폭의 끔찍한 피해를 당한 이들이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위령비를 찾을 경우 옆에 심어진 나무에도 잠깐 시선을 옮겨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역사를 뒤로 돌리고 싶어 하는 일부 일본 우익들에 맞서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젊은이들과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그런 의지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히로시마#오바마#한국인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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