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혀야 잘 팔린다”… 출판계 점령한 구어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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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자기계발서 등 중심… ‘말하듯 글쓰기’ 대세 자리잡아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몸과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음은 오직 너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다. 그런데 왜 이 보물을 써먹지도 못하고 낭비하고 있는 거냐?”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듯하다. 앞 문장은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에, 뒤 문장은 취업준비 요령을 소개한 ‘본부장이 말한다: 네가 지난 면접에 떨어진 이유를 말해주마’(시담)의 일부다.

구어체가 출판계를 지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에세이, 자기계발 등 분야에서 ‘말하듯 글쓰기’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위로하듯, 논쟁하듯 때로 독설을 퍼붓듯 구어체의 형태도 방식도 다양하다.

‘완벽하지…’와 ‘인성이 실력이다’(조벽 지음·해냄)는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쓴 것이 특징이다. 혜민 스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과 칼럼 등을 엮었고, 조벽 교수는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실제 마주하며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말하는 방법을 그대로 글로 옮겼다.

최장기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운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는 철학자와 청년이 논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구성돼 희곡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를 담은 ‘설전: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책읽는섬)는 두 스님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본부장이…’의 저자 정민우 알리안츠생명 본부장은 현실을 직시하라며 독설을 퍼붓는다. 그는 “강남 출신이 4대 그룹 직원 중에 많은 건 자격지심이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라며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은 사고 칠 확률이 높은 만큼 네 일을 해내며 당당해지라”고 일갈한다.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라이온북스)은 직설적인 조언과 함께 위로를 덧붙인다.

구어체 글쓰기가 확산되는 것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을 선호하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트렌드를 반영한 책을 재빨리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박신애 해냄출판사 기획편집팀장은 “유명 강사의 강연 내용을 풀어 정리하면 짧게는 6개월 안에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구어체 글쓰기는 말의 시대에서 문자의 시대를 거쳐 영상의 시대로 바뀌는 흐름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화가 주인 영상의 시대에 소설도 대화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고 현재 베스트셀러 가운데 구어체가 아닌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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