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일상의 기억’으로 쌓은 3622쪽의 성채… 그것은 회복을 향한 투쟁

조종엽기자 입력 2016-01-16 03:00수정 2016-01-16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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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1/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손화수 옮김/680쪽·1만4500원·한길사
표지 사진 속 저자의 인상은 강렬하다. 500원짜리 동전을 끼울 수 있을 것 같은 미간의 주름과 형형한 눈빛은 노르웨이 소설가라기보다 마치 고행을 마친 인도의 현자 같다.

철학적인 스토리가 담겼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처음 책을 펼치면 무슨 소설이 이런가 싶다. 별다른 드라마가 없다.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 TV 뉴스에서 나온 바다 표면에서 사람의 얼굴 형상을 봤던 일, 고교 시절 몰래 술을 마셨던 일, 지금 정신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일 등 본인의 기억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헌데 읽다 보면 매력 있다. “나는 얼른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불을 껐다. 그러고는 캄캄한 방 안에 누워 어머니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차 문을 닫는 소리, 마당의 자갈 위를 걷는 발소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 어머니가 집 안에 있을 때면 그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최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허은실 시인은 “이 작가는 글쓰기로 기억의 투쟁을 벌이며, 스스로도 몰랐던 자기를 찾아간다”고 말했다. 소설은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기억이 나중에도 영향을 미치는 원형적인 기억이건 아니건, 오직 독자 자신만의 소유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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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와 관계없이 완고한 것으로 보이는 구조 속에서, 남루함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자기 삶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작가는 일상이라는 벽돌에 성찰이라는 시멘트를 발라 원서 기준으로 총 3622쪽 6권에 이르는 거대한 성을 구축했다. 소설은 ‘당신도 잊고 있을 뿐, 이런 성채를 갖고 있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작가는 개인들이 놓쳐 사라진 것들, 받은 상처를 회복시킨다”고 평했다.

2009∼2011년 출간된 이 소설은 인구 500만여 명의 노르웨이에서 50만 부가 팔렸고, 32개국에서 번역됐다고 한다. 최근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현대 북유럽 문학의 한 대표작이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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