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배우중심 연극’ 진수 보여준 박정자의 관록

입력 2015-10-06 03:00업데이트 2015-10-06 05:1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리뷰]연극 ‘키 큰 세 여자’
국립극단의 신작 ‘키 큰 세 여자’ 1막 장면. 1996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1999년 한 차례 재공연된 뒤 16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국립극단 제공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흔히 배우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국립극단의 신작 ‘키 큰 세 여자’(연출 이병훈)는 이런 배우의 힘을 보여준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새로 내건 ‘배우 중심 연극’의 첫 번째 작품으로 관록의 두 여배우, 박정자(73)와 손숙(71)이 8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서 화제를 모았다.

1막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맥락 없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92세 노파(박정자)와 그를 돌보는 52세 간병인(손숙), 노파의 재산을 관리하는 법률사무소의 26세 여직원(김수연) 등 ‘세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대화에선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일관성 없이 자신의 인생사를 내뱉는 노파, 이를 못마땅해 하는 젊은 여직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 위주로 극은 진행된다. 개연성 없는 이야기 전개에 자칫 집중력을 잃으면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

2막은 상대적으로 전개도 빠르고 1막에 비해 이야기에 대한 집중이 쉽다. 1막에 등장한 각기 다른 세 여성이 2막에서는 한 명의 동일 인물이 된다. 노파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90대 노파가 50대와 20대 시절의 자신과 마주해 인생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과거를 회상하며 ‘아, 그때 더 현명하게 행동할 걸…’이라고 한탄하듯 말이다. 노파는 모든 것을 경험한 자로서 20대의 젊은 ‘나’와 50대 중년의 ‘나’의 질문에 답하며 지나온 생을 반추한다.

이 작품의 보석은 박정자다. 그는 이 작품에서 방금 한 말을 까먹고 애먼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심통을 부리면서도 관객에게 밉지 않게 다가가야 하는 90대 노파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아기처럼 주변의 보살핌을 받고 싶어서 앓는 소리를 하는 철없는 노파를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그가 연기하는 노파를 보며 관객은 ‘늙음’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1막에서는 전체 대사의 90%가량을 도맡을 만큼 박정자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2막에서는 세 여배우의 비중이 엇비슷하지만 박정자 특유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빛을 발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커튼콜에선 그가 등장할 때 관객의 박수 소리가 유달리 컸다.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