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것, 물리학의 힘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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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의 물리학/김범준 지음/280쪽·1만4000원·동아시아
‘세상 물정의 물리학’ 펴낸 김범준 교수
명절 때 고속도로 분석해보니 차량 10%만 줄어도 정체 없어
야구·영화·정치적 이슈 등 세상과 이어진 다양한 주제
통계물리학 활용해 연구할 것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 전공 교수는 “우주를 책에 비유한다면 천체물리학은 책의 알파벳을 알아내는 학문이고, 통계물리학은 알파벳이 모여 어떻게 문장을 이루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 전공 교수는 “우주를 책에 비유한다면 천체물리학은 책의 알파벳을 알아내는 학문이고, 통계물리학은 알파벳이 모여 어떻게 문장을 이루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누가 맞을까?

책에 따르면 김, 이, 박, 최, 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맞은 확률이 54%나 된다. 이들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성씨가 13만여 개인 데에 비해, 우리나라 성씨는 300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상위 22개 성씨가 전체 인구의 80%나 된다. 이런 통계 자료를 분석하면, 상위 성씨는 매우 많고 하위로 내려갈수록 그 성씨를 가진 사람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한국에서 종친회가 왜 활발한지, 사람들의 동질성이 왜 높은지 유추할 수 있다.

흔히 물리학 하면 거대 이론을 떠올린다. 천체물리학, 양자역학 같은 단어들이 물리학을 세상과 떼어내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성균관대 물리학 전공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여러 사회 현상의 본질을 분석한다. 분석틀이 물리학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세상 원리를 밝히는 점에서 2013년 나온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과 맥을 같이하는 책이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저자는 “이 책의 내용처럼 통계자료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는 물리학을 통계물리학 혹은 사회물리학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책에 담긴 다른 이야기들도 물리학답지 않게 세상사를 꼬치꼬치 캐묻는다. 2012년 프로야구팀들의 이동거리를 분석해 보니 롯데가 9200km로 가장 길었고, LG는 5500km로 가장 짧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동거리가 길면 경기력이 떨어져 불리할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끈 이유도 나온다.

명절 교통체증 문제도 다룬다. 경부고속도로에 차가 막힘없이 달리려면 하루 9만6000대쯤 돼야 한다. 그런데 어느 해 설 전날 부산 방향으로 서울에서 진입한 차를 보니 10만4000여 대. 저자는 “시간대를 분산하고 차 대수를 10%만 줄여도 정체 없는 명절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도 있다. 저자는 한 커피전문점의 전국 밀도와 초등학교의 밀도를 비교한다. 이 결과를 보면 커피전문점의 밀도는 인구밀도와 거의 정비례하는 반면, 초등학교의 밀도는 그렇지 않았다. 이익을 추구하는 커피전문점은 사람 수에 따라 좌우된다. 반면에 인구가 적은 곳에도 학교가 있는 걸 보면 초등학교 분포는 애초에 학생들의 통학거리를 고려해 공익적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율성을 이유로 학교들을 통폐합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통폐합으로 늘어난 통학거리와 시간을 고려하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물고 있는 셈이죠. 공공의료원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의미죠.”

저자는 “앞으로도 큰 주제보다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호남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경상도 출신이 많은 곳은 여당 성향이 강해요. 그런데 이런 경향이 대(代)를 이어서도 유지되는지를 연구할 계획입니다.” 세상물정에 대한 그의 끝없는 호기심이 빚을 결과물이 기대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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