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계기술 포럼]“ICT만으론 한계… 경제성장 지속하려면 제조업 더 강화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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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계연구원, 대전 대덕특구서 개최… 국내외 전문가 200명 참석

17일 오전 한국기계연구원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5 한국기계연구원 국제포럼코리아’에서 참석자들이 제조업 경쟁력을 주제로 연사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17일 오전 한국기계연구원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5 한국기계연구원 국제포럼코리아’에서 참석자들이 제조업 경쟁력을 주제로 연사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한 ‘2015 한국기계연구원(KIMM) 미래기계기술포럼 코리아’가 17일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기계연구원에서 열렸다. 포럼에는 최문영 미국 코네티컷대 부총장, 김창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 스티븐 카니 ‘얼라이언’사 부사장, 마티아스 헨젤 티센크루프 부장, 양웅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승주 두산중공업 기술연구원장, 야마나카 마사히토 야마나카 엔지니어링 대표, 앨버트 피사노 UCSD 제이컵스 공과대학장, 천칭밍 대만 금속산업연구개발센터 부소장, 오태석 미래창조과학부 연구성과혁신정책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임용택 기계연구원장은 “전 세계에서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제조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며 “제조업이 선진국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는지 검토하고 한국 제조업의 발전방향과 가능성을 모색할 소중한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KIMM 페스티벌’ 기간인 13일부터 ‘국제냉간단조그룹(ICFG) 연차회의’와 ‘한-독 레이저 생산제조 국제기술 교류회’ 등 국내외 행사 5개를 연이어 열었다. 17일 포럼에 참석한 최 부총장과 카니 부사장, 야마나카 대표, 임 원장 등 4명에게서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견해를 들어봤다.

▼ 한국기계연구원 임용택 원장 “유행 상관없이 제조업 중시하는 獨-日 배우자” ▼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을 이룬 것은 제조업 덕분이었고 앞으로도 경쟁력을 지속하려면 제조업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올해 한국기계연구원 국제포럼의 주제를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잡은 임용택 원장(사진)은 “정보통신기술(ICT)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며 전통적인 제조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ICT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언했고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프로젝트로 우리 제조업 전 분야를 위협하고 있다”며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산업의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제조업을 강조하는 독일과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공정설계에 선도적으로 도입하면서도 손기술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야마나카 엔지니어링은 좋은 사례다”라고 말했다.

국내 연구소나 기업들이 글로벌 전략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임 원장은 “참가비로 500달러를 받고 항공료도 지원하지 않는 이번 포럼에 기술이 앞선 독일과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8개국 30개 회사와 연구소들이 자비로 직원을 보낸 데 적잖이 놀랐다”며 “우리도 국제회의에 능동적으로 전문가를 보내 배우는 개척자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에 국내 회사 중에서는 중소기업 두 곳만 참여했다.

임 원장은 “인터넷 이후 최고의 세계적인 화두인 3차원(3D) 프린팅 산업에서 우리는 장비를 직접 개발해 스스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정부출연연구원의 역할이 기대된다”며 “기계연구원은 정부의 ‘메타머티리얼’(900억 원)과 ‘3D 프린팅’ 개발 사업(300억 원)자로 확정돼 일단 기대감 속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임 원장은 “정부가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방향을 제시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틀을 놓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초일류 제품 경쟁력 비결은 첨단-전통의 조화” ▼

냉간단조 금형제작 ‘히든 챔피언’
日 야마나카社 야마나카 대표

‘단조 부품의 개당 금형 비용의 최소화를 실현한다.’

냉간단조(상온에서 금속을 변형 가공하는 것) 금형 제작 분야의 세계적인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인 일본 야마나카 엔지니어링의 야마나카 마사히토(山中雅仁) 대표(사진)의 명함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는 “우리 회사의 금형 가격은 통상 20∼50% 비싸지만 그 금형으로 찍어낼 수 있는 제품 수는 훨씬 많아 이런 약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가진 경쟁력의 비밀은 ‘첨단’과 ‘전통’의 공존이다. 1990년대 초반 첨단 기술의 산물인 ‘금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이를 적용해 정밀한 금형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컴퓨터 기반의 엔지니어링(CAE)은 도요타자동차가 이 회사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숙련공’ 유지다. 금형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직도 숙련공의 마지막 연마 기술(래핑)이다. 이 회사에는 중학교를 나와 입사해 길게는 50년 넘게 일한 래핑 숙련공 20여 명이 있다. 야마나카 대표는 “‘천직의식’을 갖고 일하는 숙련공들을 위해 회사는 지속적으로 수당을 높여주고 언론 취재도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해 자긍심을 키워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금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도입 당시 이야기는 숙련공을 바라보는 이 회사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야마나카 대표는 “설계 분야 숙련공들은 기존의 작업 방식을 고집해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사용을 외면했지만 소프트웨어를 채택한 비숙련공에 비해 점차 성과가 떨어지자 입장을 바꿨다”며 “우리는 그 3년 동안 묵묵히 숙련공들의 선택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제품의 완성도는 최고의 가치다. 2013년 인도 단조업체와 개발한 성형부품에서 결함이 발견되자 수주액에 버금가는 비용을 들여 파트너 기업이 완전히 만족할 때까지 보완했다. 야마나카 대표는 “컴퓨터가 바꾼 세상에서도 ‘범사철저(凡事徹底)’는 여전히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 “시스템교육으로 기업 트렌드 반영한 인재양성” ▼

공학교육 커리큘럼 개편 주도
美 코네티컷대 최문영 부총장

미국 동부 명문 주립대 중 하나인 코네티컷대최문영 부총장(사진)은 자신이 주도하는 ‘산업계 프로젝트 학습’을 소개하며 한국 공학교육에 시사점을 던졌다.

한인 1.5세로 2012년 이 대학 부총장이 된 그는 “우리는 기업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기업의 트렌드와 요구를 반영한 인재를 길러낸다”며 “산학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도 이런 교육에 더 많이 지원한다”고 말했다.

공학교육 개편은 커리큘럼과 연구 및 훈련 분야에서 진행된다. 이미 300개 공학 교과목 가운데 24개를 ‘요소설계 방식(component focused)’이 아닌 ‘시스템 중심(system focused)’으로 바꿨다. 그는 “보잉은 부품이 230여만 개인 비행기를 만들 때 각 부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세계에서 만든 부품을 통합적으로 조립해 시스템(비행기)을 만든다. 시스템 중심의 교육은 이런 기업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공대생들은 4학년 때 교수 및 기업의 팀 리더들과 공동 프로젝트 8학점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주변의 60∼70개 기업이 크고 작은 150여 개의 프로젝트를 제공하고 참여하며 이끈다. 학생들은 여기서 응용 능력을 키워 이론에 치우친 수업의 균형을 잡아간다.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원하는 인재들을 평가하고 선발하며, 학생들은 졸업 전 취업의 기회를 잡는다. 최 부총장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프레젠테이션하며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더없이 소중한 프로 정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힌다”고 덧붙였다.

▼ “3D프린팅은 제조업 미래 바꿀 획기적인 기술” ▼

정부-기업 고난도 요구사항 해결
美 얼라이언社 카니 부사장

“교량을 만들 때 지금까지는 각 부분을 현장으로 날라 조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현장에 3차원(3D) 프린터를 설치해 원하는 모양과 강도의 교량을 프린트해 낼 것이다.”

미국 ‘얼라이언’사의 스티븐 카니 부사장(사진)은 “3D 프린팅은 제조업의 미래를 바꿔놓을 획기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며 “그 변화의 폭은 인터넷 이전과 이후처럼 막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얼라이언사는 국방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브레인 집단 성격의 기업이다. 신분상 이익 추구에 제약을 받던 일리노이공대의 교수와 연구원, 학생 등 800여 명이 자금을 모아 여러 기업체를 인수해 만들었다. 직원 3000여 명이 세계 각국 정부 및 기업의 고난도 요구사항을 해결해주고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 카니 부사장은 1994년부터 한국이 전함(울산함)을 제작하고 이를 수출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이 기업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골프공 성능인증 기계를 개발해 이 분야 기술의 전설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는 “3D 프린팅의 영향은 음식업부터 중공업까지를 망라할 것”이라며 “음식 재료를 파우더로 변환하면 사막에 맥도널드 매장을 세우고 즉석에서 햄버거를 프린트해 낼 수 있다. 또 지금보다 훨씬 복잡한 형상의 감속기어도 단조 공정 또는 기계 가공 없이 프린트해 낸다”며 “하지만 제조업은 없어지지 않고 앞의 예처럼 일하는 방법이 달라질 뿐”이라고 전망했다.

카니 부사장은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으로 지금처럼 넓은 공장이 불필요해 새로운 아이템을 선점한 소규모 창업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대기업은 가능성 있는 소규모 창업기업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한국도 달라진 세상에서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대량 실업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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