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50년 동안 참아온 ‘잊었던 길’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16시 49분


코멘트
‘굿바이 로빈 윌리엄스.’

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러바드’는 지난해 8월 11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미국에선 7월 개봉됐고 국내에선 그의 사망 1주기에 맞춰 윌리엄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에서 ‘키팅 선생’으로 나와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을 외쳤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에서 오랜만에 답을 찾은 양 활짝 웃는 윌리엄스의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블러바드, 영화 제목이기도 한 길은 주인공 놀런(로빈 윌리엄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소재다. 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이자 26년째 성실하게 은행에서 근무하는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자주 찾아가는 효자이기도 하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견실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들게 된 ‘낯선 길’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지점장 승진 기회가 찾아와 더 탄탄한 길이 놓일 순간 그는 게이들에게 몸을 팔면서 살아가는 레오(로베르토 어과이어)를 만난다. 열두 살 여름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50년 동안 꾹꾹 눌러왔던 ‘잊었던 길’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놀런이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하나둘씩 균열이 생기고 무너졌다. 지점장 승진의 기회도 사라졌고, 부부 동반으로 크루즈 여행을 꿈꿔온 부인에게는 이별을 선언한다. 모든 일의 장본인인 레오도 한 순간의 꿈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좋았던 그 길이 사라진 자리엔 자신이 원해왔던 ‘진짜 길’이 드러난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배우 윌리엄스의 삶의 결말은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 속 그는 몸소 그만의 유쾌함으로 오늘을 즐기는 진짜 인생의 길을 보여준다. 그래서 떠나간 그가 더 아쉽다. 15세 이상.

김배중기자 wante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