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유책주의 vs 파탄주의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5-06-27 03:00수정 2015-06-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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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단란한 가정을 꾸린 일본인 노부부. 은퇴 후 위암으로 투병하던 남편이 어느 날 살해된다. 범인은 아내였다. 간병 도중 남편이 36년 전 불륜을 저지르고 사과했던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죽였다는 것이다. 최근 도쿄지방법원은 “50년 동안 추억에 즐거운 일도 있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고 살라”며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아무리 오래전 얘기라고 해도 배우자의 외도란 용서할 수 없는 죄인가 보다. 만약 남편이 건강했다면 할머니는 이혼을 선택하고 우발적 살인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혼은 협의 이혼과 재판상 이혼으로 구별된다. 부부가 서로 합의한 협의 이혼과 달리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의 합당한 이혼 사유가 있어야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1965년 이후 ‘유책주의(有責主義)’를 도입해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파탄주의를 채택했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 청구를 인정한다.

▷바람피운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마련됐다. 15년 동안 다른 여자와 동거해 혼외 자녀를 낳은 남편이 법적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 상고심이 계기다. 이혼에 대한 인식 변화에 맞춰 현행 유책주의를 파탄주의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두 여성 변호사가 뜨거운 공방을 펼쳤다.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 증오만 키울 뿐”(김수진 변호사) “부정행위로 혼인을 깨 놓고 관계가 파탄됐으니 해방시켜 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보호할 수는 없다”(양소영 변호사)는 주장이 맞섰다.

▷유책주의는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쫓아내는 ‘축출 이혼’을 막는 데 기여했다. 요즘은 거꾸로 50, 60대 남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족 부양을 위해 일밖에 몰랐던 남편이 퇴직 이후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를 받았을 때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것이다. 반세기를 이어온 유책주의가 과연 언제까지 파탄주의의 거센 도전을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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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유책주의#파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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