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평화는 전쟁의 산물…“원시는 대량학살의 시대였다”

입력 2015-06-20 03:00업데이트 2015-06-20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쟁의 역설/이언 모리스 지음·김필규 옮김/672쪽·2만9000원·지식의날개
1937년 일본군의 폭격으로 불에 탄 중국 상하이 기차역에 화상을 입은 어린아이가 앉아 있다. 지식의날개 제공1937년 일본군의 폭격으로 불에 탄 중국 상하이 기차역에 화상을 입은 어린아이가 앉아 있다. 지식의날개 제공

‘전쟁이 도리어 번영을 가져온다?’

이 책은 도발적이다. 충분히 논란을 일으킬 만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온갖 반전(反戰) 서적이 쏟아지는 마당에 아마도 가장 튀는 신간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책의 최대 매력이다. 고리타분한 도덕주의 설교가 아니라 다양한 고고학 데이터와 인류학 관찰기록으로 탄탄한 반전(反轉)의 논리를 세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부터 세게(?) 나온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산물이다. 2차 대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461년 잉글랜드 내전 당시 적군의 공격을 받아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병사의 두개골. 저자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1461년 잉글랜드 내전 당시 적군의 공격을 받아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병사의 두개골. 저자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인구 비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루소보다 홉스의 성악설에 가깝다. 통제되지 않은 개인의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 이른바 ‘평화로운 원시시대’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수많은 전쟁을 거쳐 부족이 통합되고 국가가 생기면 사인(私人)들 사이의 처절한 폭력은 점차 사라지고 평화와 번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유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인간들이 순순히 리바이어던(Leviathan·국가권력)에 자신을 예속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고대 어떤 기록을 뒤져봐도 사람들이 합의에 의해 그냥 모여서 큰 사회를 형성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폭력이나 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강력해진 리바이어던이 전체주의 괴물로 나타난 금세기는 고대보다 더 평화로운 시대인가. 양차 세계대전의 대량학살을 떠올리면 도저히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고고학과 인류학의 최신 연구 성과는 인류가 갈수록 평화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1, 2차 대전이 벌어진 최근 100년 동안 전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1억∼2억 명이 전쟁 등 온갖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비해 석기시대의 소규모 사회에서 폭력으로 사망한 인구비율은 현대보다 무려 10배나 높은 평균 10∼20%에 이른다.



고대 사회의 가족묘를 발굴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무기가 함께 출토된다는 저자의 경험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만큼 고대인들이 상시적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적석목곽묘를 비롯한 삼국시대 무덤에서 ‘둥근 고리 큰칼(環頭大刀·환두대도)’ 등 다량의 무기가 발견됐다.

저자는 전쟁이 평화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현상을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제국이다. 로마가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하드파워와 문화적 혜택의 소프트파워로 주변 야만족을 끌어들이면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마제국에 의한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로마가 ‘정주형(定住型) 도적(stationary bandits·한 곳에 머무르는 도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제국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소위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로마가 속주민들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착취하지 않는 적절한 규제 강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미국인 교수가 쓴 글답게 팍스 로마나에 대한 시각은 고스란히 ‘팍스 아메리카나’로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는 마치 공화당 매파 정치인이나 주장할 법한 내용이 나와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이 상황에 따라 국제관계에 적극 개입해 경찰국가 노릇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야기했듯 미국은 여전히 ‘지구의 차선적 희망’이다. 만일 미국이 실패하면 전 세계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 다음 40년 동안에도 군비를 유지해야 하고 믿을 만한 리바이어던으로서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갖춰야 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베스트 추천